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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 지유명차 티클래스 후기: 차(茶)에는 낭만이 있다

차(茶)는 익숙하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다. 유명 브랜드의 티백은 흔히 마시기도, 선물하기에도 좋아 대중적으로 가깝게 느껴지지만, 다도(茶道)나 다례(茶禮)라는 말 앞에서는 왠지 올드하다는 인상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젊은 세대의 차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차 관련 전시나 박람회에는 사람이 북적이고, 블로그와 SNS, 유튜브에서는 젊은 이들의 ‘차 생활’이 감각적이고 세련되게 공유되고 있다. 차가 지닌 차분함과 편안함이 바쁘고 정신없는 시대에 쉼이자 여유가 되어준 것일까. 그야말로 현대인의 다례가 낭만을 안고 퍼져나가는 셈이다.

필자의 차 생활도 그렇게 시작됐다. 어느 날 우연히 예쁜 다기를 충동구매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하나둘 차를 모으고 마시는 시간이 자연스러운 취미가 됐다. 회사 차 동아리인 컴티스푼에 초기 멤버로 망설임 없이 가입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차가 대체 왜 자꾸 낭만이라는 건지, 茶근茶근 풀어내려 하니 끝까지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


어느 날 컴티스푼 채팅방에 분기별 동아리 활동으로 찻집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자칭’ 명예 회원으로서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특히 방문 예정이었던 가산 지유명차는 회사에서 몇 블록 거리에 위치해 있었고, 얼마 전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차문화대전에서 부스를 방문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이 컸다.

멀리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간판에 적힌 문구였다.

‘차에 담긴 시간을 선물합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차는 같은 차나무에서 딴 잎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평소에 자주 접하는 녹차와 홍차는 물론, 백차, 청차, 황차, 흑차 모두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지유명차가 전문적으로 다루는 보이차도 흑차의 한 종류로, 오랜 발효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시간이야말로 보이차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보이차에 담긴 ‘시간’이 길수록 가치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간판에 적힌 ‘차에 담긴 시간’이라는 문구가 비로소 이해가 갔다. 우리는 정말로 차에 담긴 시간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보이차를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찻집 안은 독특한 향으로 가득했다. 마른 낙엽 같기도, 나무껍질 같기도 한, 고목으로 만든 장롱 냄새라고 해야 할지. 처음 느껴보는 향과 분위기에 저절로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졌다. 함께 방문한 차 동아리 회원 네 명 모두 차린이가 되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팽주(차를 우리는 사람)인 사장님을 구경하며 눈만 데구루루 굴리는 모양새가 귀엽고도 우스웠다.

사장님은 예상과 달리(찻집 사장님이라면 왠지 나이가 지긋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다) 젊고 세련된 분이셔서, 실례를 무릅쓰고 어떻게 찻집을 운영하게 되셨는지 여쭤보았다. 차를 향한 사랑으로 이루어낸 덕업일치 스토리를 듣고 나니, 사장님을 둘러싼 편안한 분위기가 단번에 이해됐다. 덕업일치는 역시 행복이 되는 모양이다.

차 우리기
내부 풍경

우리의 티 코스는 숙차, 생차, 생차(97 7542) 순으로 진행됐다.

보이차는 발효 공정에 따라 숙차와 생차로 나뉜다. 숙차는 청국장처럼 인공 발효 공정을 거치고, 생차는 된장처럼 자연 발효로 만들어진다고 사장님이 설명해 주셨다. 처음 마주한 숙차에서는 찻실을 채우는 공간의 맛이 났다. 마른 껍질, 나무껍질의 맛이었다. 문득 다른 차 동아리 회원에게 선물 받은 보이차가 떠올랐다. 이 맛이 보이차의 기본 맛인 줄 알았는데, 다음으로 마신 생차를 마시고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생차에서는 무어라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과일 향과 함께 쌉싸름한 목 넘김이 느껴졌다. 분명한 것은 앞서 마신 숙차와는 완전히 다른 차였다는 점이다. 발효 공정 방식만으로 향과 맛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찻잎 색

숙차와 생차의 찻잎은 색도 형태도 한눈에 구별될 만큼 다르다. 이즈음 되니 혈액순환이 잘된 모양인지 온몸이 후끈해지고 땀이 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보이차는 발효차인 만큼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속성이 있다고 사장님이 설명해 주셨는데, 이전에 지유명차를 방문했던 다른 회원이 땀이 많이 날 예정이니 최대한 시원하고 땀이 나도 티 나지 않는 옷을 입고 가라 조언해 준 것이 떠올랐다.

운세카드

차를 마시는 동안 찻자리를 둘러싼 재미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꽤나 마음에 와닿았던 오늘의 응원 카드 문구 뽑기도 그중 하나였다.

토끼 모양 차총
물 뿜는 개구리

따뜻한 차에 닿으면 색이 변하는 토끼 모양 차총(작은 도자기 장식품)과 물을 뿜는 개구리처럼, 차를 마시는 자리에는 온갖 귀여운 소품들이 함께했다. 작은 물건 하나하나에도 정성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사장님은 찻자리 곳곳에서 즐거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다가, 틈틈이 차실에 전시된 자사호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다. 자사호란 중국 특정 지역에서 나오는 돌을 잘게 부순 흙으로 만든 주전자로, 기본 모양마다 이름이 있고 만드는 이의 개성이 담기기도 한다. 차실 뒤편에는 특색 있는 주전자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는데, 저마다 다른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자사호를 꼽자면 역시 ‘서시’였다.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 명의 이름을 딴 이 주전자는 둥근 모양이 그녀의 아름다운 가슴을 연상시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설명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집에 가면 다른 건 다 잊고 서시만 기억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며 차 시음을 이어나갔다.

자사호들

차실 앞 벽에는 여러 보이병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보이병차
7542의 위엄

이 중 마지막으로 사장님이 꺼내주신 차는 보이생차의 표준이자 대표라 할 수 있는 7542였다. 가격표를 보다 눈이 번쩍 뜨였다. 일, 십, 백, 천, 만… 백만 원이었다. 이런 귀한 차의 가치를 나 같은 초보가 지금 가늠할 수 있을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입에 대보니, 역시 다르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앞서 마신 보이차들도 특색이 뚜렷하고 맛있었지만, 7542 생차는 세월의 관록이 느껴진달까, 뾰족했던 특색이 둥글둥글하게 정제되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쉽게 말해 비싼 맛이었다.

바로 앞서 마신 생차는 목 넘김에 떫은맛이 남아 있었는데, 7542 생차는 아주 깔끔했다. 오래 묵힌 맛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젊은 날의 치기 어린 힘은 시간이 갈수록 노련하고 지혜로워진다. 7542는 보이생차의 대표 중 대표이기에, 사장님 덕분에 우리는 보이차 좀 마셔본 사람 축에 낄 수 있게 되었다.

문득 보이차의 생산연도 표기가 눈에 띄었다. ’97 7542′ 중 97은 생산연도를 뜻한다. 자연스레 나와 동갑내기 보이차를 찾으려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실제로 출생 연도에 맞추어 빈티지 보이차를 선물하거나 구입하기도 한다고 사장님이 이야기해 주셨다.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차라니, 이보다 낭만적인 게 또 있을까.

차를 내릴 때마다 붓으로 자사호를 스윽스윽 다듬으시는(양호: 주전자를 길들이는 방식) 사장님을 보며 차를 호로록 마시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몸은 따뜻한데 에어컨 바람은 시원해 나른하고 몽롱해지면서, 업무로 바쁘게 달려온 긴장이 어느새 느슨해졌다. 피로가 서서히 풀려갔다. 그래, 낭만이란 이런 맛이겠다 싶었다. 물결 랑(浪), 흩어질 만(漫)이라는 뜻 그대로, 흩어지는 물결에 몸을 맡기고 내면의 쉼을 갖는 것. 실제로 우리는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두 시간 넘게 차만 마셨는데도 누구 하나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호를 길들이다

마지막으로 자사호와 같은 흙으로 만든 땅콩 모양 차총과 달콤한 사탕 선물을 끝으로 티 테이스팅 클래스가 마무리됐다.

자사땅콩
사탕 선물

차에 입문하고 나서 찻집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내심 차의 끝판왕이라 여기던 보이차를 잔뜩 마셔볼 수 있어 무척 반갑고 즐거웠다. 보이차는 이해하는 데에 한 생애가, 우롱차는 무려 세 번의 생애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을 만큼 차의 세계는 깊고 넓다. 그 세계를 짧은 시간 살짝 맛보았을 뿐인데도 차가 주는 낭만 속에서 흠뻑 유영할 수 있었다. 이번 찻집 경험은 나만의 휴식을 찾아갈 좋은 에너지를 얻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일도 휴식도 어떻게든 알차게 뽕을 뽑아야 직성이 풀리는 게 우리 아닌가. 가끔은 그 숨 가쁜 번잡함에 매몰되기 전에, 바쁜 일상에 마음을 잡아먹히기 전에 차 한 잔 하며 내면에 작은 휴식 공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가산의 편안한 찻집 지유명차를 방문하면서, 또는 사는 곳 근방 어딘가의 찻집을 방문하면서 말이다.

우루 기자

지유명차 찻집 방문 후 따근따근한 기억을 가지고 틈틈히 메모해두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조금 시간이 지나 정리하려니 오래 걸렸던 것 같아 저의 게으름을 탓해봅니다. 조금 더 신선하고 멋진 기억을 공유드렸으면 좋았을껄~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그래도 차를 사랑하는 제 마음을 꾹꾹 담아 전달합니다! 다우님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길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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