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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떠나면 더 설레는,
나의 따뜻한 방콕 여행 가이드

한파가 심할 때 유독 생각나는 나의 따뜻한 남국, 방콕

승무원들이 사랑하는 *레이오버 (*비행 후 도착지에 1박 이상 머물렀다, 베이스로 복귀하는 듀티) 장소엔 몰디브도 세이셸도 파리도 있겠지만, 내 최애 중 하나는 늘 방콕이었다. 차이 밀크티 하나에 바나나 로띠, 그리고 해산물을 푸짐하게 먹어도 늘 은총이 내려오는 가성비와, 비염이 심해 늘 여러 개를 묶어 구매했던 프로폴리스 스프레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시원하게 눌러주는 전신 지압 마사지.. 그곳이 천국 아니겠는가?

씨콘 스퀘어의 레스토랑에서 먹은 해산물
차이 밀크티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중략)
마지막 과실을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 주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날] 발췌

사계절의 온도 차가 극명한 나라에 살다 보면, 추운 겨울엔 더운 여름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땀이 없고 추위를 많이 타는 필자는 겨울 연말연시에는 꼭 따뜻한 곳으로 가족과 연말 여행을 가곤 했다. 온도가 영하권으로 떨어진 크리스마스 연휴, 짐을 꾹꾹 눌러 챙겨 떠난 방콕. 달라진 태국 여행 트렌드를 참고하여, 요모조모 둘러보고 온 방콕을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현지에서 직접 해 먹는 망고 스티키 라이스의 맛, ’타이 쿠킹 스쿨‘

Sompong Thai Cooking School 주소: 31/11 Silom Road, Bangkok Thailand 10500 

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집에서 태국 음식을 만들어 보는 상상을 해 보았을 것이다. 팟타이 밀키트, 그린 커리 페이스트 등을 구매해 집에서 새우를 볶고 땅콩 가루를 올리며 내가 원하는 그 맛이 나겠지? 하는 순간들. 하지만 현지에서 직접 전문가의 지도와 함께 그 맛을 직접 구현해 보았다면, 집에서 태국 음식을 해 먹더라도 정통 레시피로 훨씬 맛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솜풍 타이 쿠킹 스쿨’에서 직접 만든 팟끄라 프라오까이(바질 닭고기 볶음), 추치궁(매운 새우 커리), 카오니아우 마무앙(망고 찹쌀밥), 팟타이(태국식 볶음 쌀국수)

내가 방문했던 ‘솜풍 타이 쿠킹 스쿨’은 직접 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감별하여 구매하는 방법부터, 조리 후 예쁘게 요리를 플레이팅하는 방법까지를 쉬운 영어로 알려 준다. 이를테면, 팟타이를 만들 때 양념 재료로 들어가는 건새우는 빨간 색소가 들어가지 않은 은은한 주황빛이 좋고, 코코넛 설탕은 바로 사용할 거라면 약간 수분감이 남아있는 되직한 덩어리로 구매하는 게 좋다. 구매한 재료들을 은그릇에 덜어 한 숟가락씩 맛보며 아, 이런 감칠맛이 조리에 사용되어 이런 맛을 만드는구나 하고 느끼면 요리가 재밌어진다. 현지 요리사 선생님의 지도하에 재료들을 직접 다듬고, 썰고, 볶고, 끓이는 과정들은 맛과 향으로 오감을 자극함과 동시에 직접 만들어 먹는 한 그릇의 뿌듯함을 준다.

30가지 레시피 중 커리 1종, 볶음요리 2종, 디저트 1종을 선택하면 조리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전부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들어가는 이 다양한 재료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깊은 맛을 구현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30가지 태국 요리 조리법이 기록된 메뉴 레시피 북

경복궁엔 한복을, 왓 아룬에선 쑤타이를

왓 아룬 사원 주소: 158 Thanon Wang Doem, Khwaeng Wat Arun, Khat Bangkok Yai, Krung Thep Maha Nakhon 10600, Thailand
새벽에 더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는 왓 아룬 (새벽 사원) (이미지 출처: 인터파크 투어)

’새벽 사원‘으로도 불리는 왓 아룬은 옛 아유타야 왕국 시절부터 존재한 불교 사원의 이름이다. 수상 보트를 타고 짜오프라야강을 건너면 100밧의 입장료와 함께 들어갈 수 있으며, 실제 수행 중인 스님들의 거처인 관계로 반바지, 민소매, 망사옷 등은 입장이 제한된다. 안에는 아름답고 섬세하게 조각된 사리탑과 대웅전, 집회소 등이 있으며 색유리 조각과 금박, 타일 등으로 장식된 처마와 탑들이 화려함을 자랑한다.

200밧(한화 약 7천 원)을 내면 세 시간 동안 대여해 입고 예쁜 사진을 잔뜩 남길 수 있는 태국 전통 의상 ‘쑤타이’ (이미지 출처: Thailand Insider)

인스타그래머블 한 사진과 함께 사원의 모습을 남기고 싶다면, 태국 전통 의상인 ‘쑤타이’를 사원 근처에서 빌려 입고 사진을 찍는 것도 추천한다. 세 시간에 200밧(약 7천 원)으로 전통의상, 신발, 장신구, 머리 스타일까지 태국 스타일로 치장하고 아름다운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요즘 가장 핫하고 깔끔한 야시장, ‘조드 페어’

조드 페어 주소: Rama 9 Road Huai Khwang, Bangkok 10310, Thailand

방콕엔 규모와 종류 면에서 정말 다양한 야시장이 존재하지만, 깔끔하고 쾌적한 도심의 야시장을 즐기고 싶다면 단연코 가장 핫한 야시장은 ‘조드 페어’라고 할 수 있다.

흰색 천막 텐트 부스로 이루어진 ‘조드 페어(Jodd Fair)’의 전경 (출처: 티스토리)

유럽 크리스마스 마켓처럼 구획별로 잘 정돈된 각각의 부스들에서 마감 좋은 수공예 제품과 선물용 굿즈들, 디저트 및 다양한 태국 음식 등을 팔고 있으며, 번화한 도심에 자리 잡고 있어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랍스터와 푸짐한 랭쌥(태국식 돼지 등뼈 감자탕)을 맛보고, 후식으로 바나나 로띠(태국식 팬케이크)와 코코넛 아이스크림, 타이 밀크티를 즐긴 뒤 기념품까지 사고 싶다면 무조건 이곳을 추천한다. 희고 깔끔한 천막 부스 옆에 색색의 반짝이는 네온사인 간판들이 붙어 있어 야경 사진도 근사하게 나오는 것은 덤이다.

엄청난 비주얼이 시선을 뺏어가는 랭쌥(태국식 돼지 등뼈 감자탕) (출처: 트립닷컴)

가장 세련된 태국을 경험하고 싶다면, ‘아이콘 시암’

아이콘 시암 주소: 299 Charoen Nakhon 5 Alley, Khwaeng Khlong Ton Sai, Khet Khlong San, Krung Thep Maha Nakhon 10600, Thailand
럭셔리 플래그십 스토어, SPA 매장 등 다양한 가게가 입체적으로 설계된 건물 안에 입점한 아이콘 시암 백화점의 1-3층 실내 모습 (출처: Klook)

에밀 졸라의 소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 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백화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상업적 욕망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낸 장소이다. 열대 기후의 혹서를 피하는 공간이기 때문인지, 태국엔 유달리 많은 초대형 규모 복합 쇼핑몰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 가장 화려하고 구경거리가 많은 백화점을 꼽자면 ‘아이콘 시암’이라 할 수 있다. 여의도의 ‘더 현대 서울’ 백화점을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마켓, 전시 행사, 팝업 스토어 구경 등 구매보단 문화 체험 공간으로 인지하고 방문하듯이, 아이콘 시암도 구매보다 다양한 시각적경험으로 즐거움을 전달한다.

태국 수상시장을 실내에 구현한 ‘아이콘 시암’ 백화점의 G층 ‘쑥 시암’. 디즈니/픽사 영화에 나올 것 같은 화려한 색감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특히 꼭 둘러봐야 할 곳은, G층에 조성된 ‘쑥 시암’으로, 태국 수상시장을 재현한 거대 푸드코트와 레스토랑, 다양한 상점을 구경할 수 있다. 압도적 규모와 높은 층고로, 트렌디하지만 전통 양식을 살려 낸 목조가옥들과 전통 조각상, 연못, 다리 등을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에 구현해 두었단 점이 인상적이다. 2층, 3층을 올라가면 포르쉐, 람보르기니 등 고급 수입차 매장이 독특하게도 백화점 안에 자리하고 있고, 성형외과, 통신사, 은행, 영화관 등 거의 모든 업무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 미슐랭 셰프로 유명한 알랭 뒤카스의 파인다이닝을 짜오프라야 강변 및 방콕 야경과 함께 즐길 수 있으며, 꼭대기 층에는 각종 콘서트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대형 홀과 아름다운 분수가 놓인 조경 공간이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기획 전시, 공연 및 수상 박물관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니, 문화 자본적 경험을 확장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이콘 시암’을 꼭 추천한다.

방콕의 힙지로, ‘딸랏노이’ 

고가구와 고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는 앤틱한 감성의 홍시엥콩 카페 (출처: 트립닷컴),
정비소와 빈티지 자동차가 서 있는 골목을 지나면 나오는 딸랏 노이의 벽화 거리

‘방콕 MZ들은 뭘 하며 어디에서 놀까?’란 궁금증이 생긴다면, 방콕의 힙지로이자 문래동인 딸랏노이를 소개한다. 딸랏노이는 태국어로 ‘작은 시장’이란 뜻이나, 실제 딸랏 노이에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 오면 골목길을 따라 위치한 알록달록 예쁜 색감의 오래된 집들과 벽화 골목, 독특한 인테리어의 감성 카페, 열심히 부품을 튜닝하고 다듬는 중인 정비소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또한, ‘화양연화’의 촬영지로 유명한 ‘Old Customs House’, 오래된 가옥을 개조해 고가구, 고미술품 구경이 가능한 카페로 만든 ‘홍시엥콩’도 딸랏 노이에 자리 잡고 있으니, 시간이 되면 꼭 한 번 방문을 추천한다.

Old Customs House 주소: Bang Rak, Bangkok 10500, Thailand
홍시엥콩 주소: 734, 736 Soi Wanit 2, Khwaeng Talat Noi, Khet Samphanthawong, Krung Thep Maha Nakhon 10100, Thailand

짧은 방콕 여행을 마무리하며

그간 길고 짧은 해외여행을 종종 다녀왔지만, 이번 여행은 고생하신 부모님을 위해 경비를 전액 부담한 효도 여행이란 점에서 부모님께 ’딸자식 잘 둔 보람’을 실컷 안겨드릴 수 있어 좋았다. 코로나로 인해 그리웠던 여행에 대한 갈망을 다소간 채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크리스마스 직후인 26일을 ‘회사 공휴일’로 지정함으로써 긴 연차 소모의 부담을 줄여준 회사와, 다소 긴 휴가였음에도 흔쾌히 일정을 컨펌해 주신 팀장님 그리고 실장님께도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갑진년 푸른 용의 해인 2024년에는 내 주변 모든 사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여행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기를!

공항 직통열차 탑승을 위해 길을 물어보는 딸이 대견해 보여 찍었다는 엄마 시선에서의 나
뷔페 메뉴가 맛있어 예약한 보람이 있던 호텔 조식 사진
이지민 기자

글을 쓰며 연말 여행의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어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타이 밀크티와 지압식 마사지 그리고 팟타이를 사랑하는 직장인에게 꼭 겨울의 태국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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