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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미학, 수행의 기록: ‘검은신화 : 오공’

GAME INFO
검은 신화: 오공 Black Myth: Wukong
출시일
PS5·PC(Steam) 2024. 8. 20
Xbox Series X|S 2025. 8. 20
개발 / 배급
Game Science
플랫폼
PS5 / Xbox Series X|S / PC(Steam)
01
CHAPTER
꼭 쉬워야만 재밌을까?

요즘 게임의 흐름은 누구나 콘텐츠를 쉽게 즐길 수 있도록 무난하고 편안한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검은 신화: 오공’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참을 인(忍)’ 자를 수도 없이 새겨야 할 만큼 매운맛을 자랑하지만, 그 과정에서 솟아오르는 도파민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강력한 보스에게 패배할 때마다 몸에서 열기가 솟구치는 기분이었고, 마치 게임 속 연기 FX가 내 몸 밖으로 피어오르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나 “조금만 더 하면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슬아슬한 밸런스가 애간장을 태우며 끝없는 승부욕을 자극했고, ‘어려움’ 그 자체가 주는 짜릿한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설마 ‘검은 신화: 오공’의 게임 설계는 불교에서 사람이 무(無)로 돌아가는 것처럼, 필자의 시간 또한 무(無)로 돌려보내며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지나고 보니 그 인고의 시간은 일종의 수행이었고, 그 모든 과정은 ‘즐거운 고통(?)’이었던 셈이다.

수행의 과정(?)
02
CHAPTER
친절한 소울류 게임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체감했다. 아, 이건 <다크 소울>이나 <블러드본> 같은 소울류 DNA를 가진 게임이구나.

필자가 그동안 플레이한 콘솔 게임은 대부분 엔딩을 봐왔지만, 과거 <블러드본>만큼은 초반에 그만둔 기억이 있다. 수도 없이 사망하며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이 게임을 해야 할까?”라는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공은 확실히 할 만했다. 아니, 꽤 ‘라이트한 소울류’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망 시 경험치 삭제 같은 페널티가 없어 비교적 죽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했다. 보스도 어려운데 스킬 트리 수정에 비용까지 들었다면 성장에 대한 부담이 극에 달했겠지만, 오공은 이 비용을 없앰으로써 유저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덕분에 스킬 트리 성장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특성 포인트를 언제든 다시 설계할 수 있다.
03
CHAPTER
검은 신화의 미학, 기술이 빚어낸 동양적 환상

언리얼 엔진 5의 기술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그래픽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특히 파티클 알갱이를 활용한 연출, 플루이드 기술로 구현한 근두운, 깊이 있는 라이팅이 인상적이며, 배경과 캐릭터의 재질감 또한 상당한 사실감을 전해준다.

필자를 가장 놀라게 했던, 플루이드(Fluid) 기술로 실시간(Real-Time) 구현된 근두운
깊이 있는 라이팅을 연출했다.
단조롭기 쉬운 흰 눈의 질감을 세밀한 디자인 설계로 입체감 있게 구현했다.

무엇보다 게임 개발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들고 구현이 어렵다는 ‘털’ 표현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구현하기 까다로운 털 표현마저 풍성하고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실제 문화 유적을 3D 스캔 기술로 게임속에 구현했다고 하는데 절에서나 보던 벽화나 불교 민화 속 그림들이  ‘보스 몬스터’가 되어 눈앞에서 사실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왜 중국이 이 게임에 그토록 열광하는지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이 게임의 가장 큰 강점은 세계관과 몬스터 설정이 지닌 치밀한 개연성이다. 주인공이 도술(마법)을 사용하는 설정은 세계관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높은 설득력을 가진다. 특히 불교 법전이나 민화, 벽화 속 그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몬스터와 보스들은 기묘한 생동감을 자아낸다. 어릴 적 그림책에서나 보았던 ‘동물형 인간’들이 현대적인 그래픽으로 사실감 있게 구현된 모습은, 다채로운 콘셉트와 어우러지며 플레이 내내 색다른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인간형 보스들
04
CHAPTER
단순함 속에 숨겨진 묵직한 한 방, 액션의 묘미

오공의 전투 시스템은 얼핏 보면 기본 공격 위주의 단순한 구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체감되는 깊이는 상당하다. 게임 마지막까지 기본 공격 콤보를 거의 그대로 사용함에도 전혀 지겹지 않았던 이유는, 몬스터와의 전투 자체가 매우 다이내믹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공격은 기본적으로 벽곤·입곤·착곤 3가지 전투 스타일을 가진다. 달리면서 사용할 수 있는 ‘벽곤’, 곤봉 위에 올라가 공수 양면에 특화된 ‘입곤’, 먼 거리에서 적을 공격하는 ‘착곤’으로 나뉘며, 자세에 따라 강공격 모션과 전투 운용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입곤, 착곤, 벽곤의 강공격은 느낌과 전투 패턴이 다르다

특히 ‘피하기’의 경우, 유저의 회피 타이밍까지 계산된 듯한 몬스터들의 정교한 공격 패턴에서 액션에 대한 개발사의 철학이 느껴진다.

피하는 재미가 있다.
유저의 회피 타이밍과 무적 프레임까지 계산된 개발사의 정교한 공격 설계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패링(반격) 시스템이다. 1타·2타·3타·4타 공격 후 패링을 실행할 수 있는데, 단계마다 모션과 위력이 달라진다. 특히 3타와 4타 이후로 이어지는 반격의 손맛은 액션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필자는 이 패링 시스템의 존재를 게임 중반이 넘어가서야 뒤늦게 알았는데, 그 전까지의 고생이 억울할 정도로 강력한 재미 포인트다.

여기에 화려한 법술과 분신·변신 시스템이 더해지면서 다양한 전투 패턴이 가능해진다. 매번 보스마다 공략 포인트가 달라지고, 공격과 법술·분신·변신에 포인트 초기화까지 더해지며 만들어내는 전략적 재미는 ‘검은 신화: 오공’만이 가진 고유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분신술은 최고의 통쾌함을 선사한다.
다양한 법술을 설정
05
CHAPTER
수행인가 게임인가, 보스마다 새겨지는 참을 인(忍)

이 게임에는 히든 보스를 포함해 80여 종에 달하는 보스가 등장한다. 보스의 숫자만큼이나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인내심의 총량도 어마어마하다.

게임 초반부터 보스들의 허들이 꽤 높았다. 첫 보스를 만났을 때는 전투 시스템도 익히지 못하고 사용할 수 있는 스킬도 없는 상황에서 1~2시간 동안 죽고 부활하기를 반복했다. ‘왜 이렇게 게임 디자인을 설계했을까?’ 싶어 개발사를 원망하기도 했다.

필자에게 무자비했던 첫 보스!

특히 4장의 ‘소황룡’은 3~4시간의 사투를 벌이게 한 그야말로 ‘통곡의 벽’이었다. 알고 보니 필자뿐만 아니라 이미 수많은 유저의 멘탈을 ‘무(無)’로 만들어버린 보스였다. 다양한 공략법이 존재했지만, 개발사가 패치를 한 것인지 공략 영상대로 전투가 단순히 흘러가지 않았다.

결국 다음을 기약하고 다른 구간을 먼저 진행하며 아이템을 갖추고 어느 정도 성장한 뒤 돌아왔음에도, ‘소황룡’은 여전히 버겁고 힘들었다. 강력한 무기를 얻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기에, 오로지 클리어만을 목표로 사투를 벌이다 보니 시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황룡을 물리쳤을 때의 희열은 고통스러운 난이도만큼이나 컸다. 바로 이것이 이 게임의 진짜 재미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가장 어려웠던 보스 원픽: 소황룡!

마지막 6장에 이르러서는 그동안 갖춰온 아이템과 오공의 능력 덕분에 이전보다 수월하게 중간 보스들을 제압하며, 그간의 힘듦을 보상받는 기분도 들었다.

6장의 중간 보스들은
필자에게 더 이상 ‘수행’이 아니었다.

‘검은 신화: 오공’의 다양한 보스들은 유튜브를 찾아보면 공략법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공략법대로 처리 가능한 보스들도 있지만, 캐릭터의 능력치와 무기·방어구 차이 때문인지 적의 패턴을 알고 있음에도 무력하게 쓰러지는 무능한 필자를 수도 없이 마주해야 했다. 마음속으로 ‘참을 인(忍)’ 자를 몇 번이나 새겼는지 모른다.

06
CHAPTER
콘텐츠의 바다?!

‘검은 신화: 오공’에는 방대한 아이템과 숨겨진 보스 등 콘텐츠가 가득하다. 워낙 숨겨진 요소가 많다 보니 유튜브나 블로그 정보를 찾아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단순히 보스의 숫자만 채운 것이 아니라, 맵 구석구석에 배치된 숨겨진 서사와 보물들은 유저로 하여금 끊임없이 탐험의 욕구를 자극한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발견의 기쁨을 정교하게 설계해 둔 덕분에, 이 방대한 세계는 단순히 덩치만 키운 공간이 아닌 내실 있는 ‘콘텐츠의 바다’와 같다는 인상을 준다.

필자는 뒤늦게 플레이 진행을 위해 유튜브 동선을 참고해 보았지만, 영상대로 따라가다 보니 미리 결과를 알게 되어 재미가 반감되는 느낌도 받았다. 모르는 미래와 맞서는 것이 재미인데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혼자 쭉 진행해 본 뒤, 놓친 아이템을 확인하기 위해 나중에 정보를 찾아보는 방식으로 플레이했다. 다만 완벽주의 성향상 단독 플레이로 놓치는 콘텐츠들을 용납하기가 어려운 면도 있었다.

사실 이런 방대한 콘텐츠를 공략 없이 전부 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요소도 많다. ‘검은 신화: 오공’에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가득하지만, 이를 안내할 튜토리얼은 무척 빈약하다. 필자 역시 전투의 핵심인 ‘패링’ 시스템이나 법술 획득처를 게임 중반이 넘어서야 외부 정보를 통해 깨달았을 정도다. 벽곤·입곤·착곤의 상세한 차이마저 따로 공부해야 할 만큼 불친절한 구조 탓에, 공략 없이는 이 방대한 콘텐츠의 절반도 누리기 어렵다는 점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07
CHAPTER
서유기, 아는 맛인 줄 알았는데?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필자가 조작하는 캐릭터가 우리가 아는 <서유기>의 ‘오공’인지, 아니면 그의 ‘후예’인지에 대한 정체성이었다. 그 존재의 정의에 따라 스토리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플레이를 이어 갈수록 처음에는 담담하게 느껴졌던 서사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해가며, 이야기가 주는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했다.

게임 도입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유기의 ‘제천대성 오공’

친숙한 서유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토리는 매우 훌륭하다. 특히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인게임 그래픽(3D 표현)과는 또 다른 시각적 자극을 주며 스토리에 대한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그중에서도 4장에서 보여준 저팔계의 예상치 못한 슬픈 서사는 연출과 미학 측면에서 단연 압권이었고, 도서관에서 원작 <서유기>를 다시 찾아보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서사가 게임 속 설정인지, 아니면 실제 고전 <서유기>의 내용인지 궁금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외에도 궁금증과 재미를 자아내는 서사적 요소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서유기>라는 진부한 옛이야기를 넘어 고전의 깊이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3D 그래픽과는 또 다른 미학을 보여주는 장별 엔딩 컷. 인형극 화풍(좌)과 애니메이션 서사(우)
08
CHAPTER
우리만의 고전, AAA급 게임을 기다리며

중국은 고전 <서유기>를 통해 전 세계 게이머를 놀라게 하는 문화를 창조해냈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옛이야기를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서사와 그래픽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검은 신화: 오공’의 사례처럼, 우리 또한 ‘홍길동’이나 ‘구미호’ 같은 전통 소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다면 K-컬처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게임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만의 고전이 게임이라는 멋진 그릇에 담길 날을 기대해본다.

푸우 기자

총 플레이 시간을 확인하니 68시간이 훌쩍 지나있었습니다. 매 순간 도파민이 분출되는 짜릿한 시간이었는데요. PS5의 패드가 고장 날 만큼 치열했던 이 여정은, 결국 한 판의 ‘수행’이었고 기분 좋은 ‘성취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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