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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W 2025 참관기

올해 KBW 2025는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어디에 쓰이는가”에 초점을 맞춘 행사였다. 전시장은 더 이상 신기술을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라, 블록체인이 현실 경제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장터로 변해 있었다. 산업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고, 그 속에서 한국이 가진 역할과 가능성 또한 새롭게 드러났다.

이번 KBW에서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참가자 구성과 세션의 성격이었다. 이전까지는 블록체인 개발자나 초기 빌더들이 주를 이뤘지만, 올해는 거래소 사용자, 리워드 참여자, 일반 Web2 유저들이 대거 방문했다. 메인 호스트로 거래소(빗썸)가 참여한 영향도 크다. 이는 ‘기술 행사’가 아닌 ‘시장 이벤트’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행사장은 기술 세션보다 보상형 이벤트와 브랜드 부스가 더 붐볐다. 산업의 무게 중심이 ‘코드’에서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세션의 내용 또한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블록체인 구조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발표가 중심이었다면, 올해는 규제, 제도, 스테이블코인, RWA, STO, DeFi 등 실제 자금의 흐름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패널에는 정치인과 금융권 인사가 대거 참여해 기술보다 ‘법과 자본이 만나는 접점’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즉, 블록체인은 이제 ‘혁신 기술’이 아니라 ‘규제와 금융의 언어’로 번역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해외 연사들의 발언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국 시장에 대한 높은 이해도였다. 그들은 T-머니, 카카오택시, 쿠팡 등 한국의 디지털 인프라를 예로 들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기술 수용 속도가 빠른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결제 및 송금 시스템은 해외 기업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실험 주제로 꼽혔다.

한국은 단순히 거래량이 많은 시장을 넘어, 새로운 금융 실험이 가능한 테스트베드로 자리 잡았다. 이는 “규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소비자 사용 패턴을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라는 의미다.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에서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검증하고,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확장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제 인프라, 문화적 친숙함, 높은 디지털 접근성이 결합되면서 한국은 이제 ‘혁신을 테스트하는 나라’로 재평가받고 있다.

올해 KBW에서는 ‘돈이 실제로 도는 구조’를 중심으로 한 논의가 돋보였다. 대표적으로 스테이블코인과 실물자산(RWA) 토큰화는 모든 세션을 관통하는 공통 화두였다.

와이오밍 주정부의 공공형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는 ‘행정 효율성’과 ‘이자 수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현실적 모델을 제시했으며, 민간 기업들은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결제 인프라를 논의했다.

DeFi 패널에서는 ‘온체인 유동성’을 단순히 암호화폐 거래가 아닌, 토큰화된 국채나 기업 채권의 담보 시장으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주목을 받았다. 또한, TVL(총 예치 자산)과 슬리피지(거래 효율성) 같은 실질 지표가 시장 신뢰도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강조했다. 즉, 블록체인은 더 이상 ‘가상 자산의 실험장’이 아니라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가상자산 커스터디(수탁) 사업은 올해 가장 현실적인 산업으로 부상했다. 국내 은행과 보안 기업들은 보험, MPC 지갑, Zero Trust(무신뢰) 구조 등 전통 금융 수준의 보안 체계를 앞세워 기관 투자를 준비 중이다.

특히 KRW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 기업들은 ‘웹2와 웹3를 잇는 촉매제’를 목표로,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제시했다. 기술보다 ‘신뢰’와 ‘보안’이 산업 경쟁력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커스터디는 향후 한국 블록체인 금융의 핵심 축이 될 가능성이 크다.

AI는 KBW 2025의 또 다른 주역이었다. AI 에이전트 관련 세션에서는 “AI는 아직 첫 이닝에 불과하지만, 곧 인간보다 많은 에이전트가 인터넷에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됐다.

AI와 블록체인이 결합하면 데이터 보안, 프라이버시, 신뢰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금융 거래를 자동화하는 ‘에이전트 상거래(Agent Commerce)’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수이(Sui)는 저지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AI 로봇과 블록체인의 실시간 결합을 시연하며 “AI 로봇이 온체인에서 지갑을 통해 스스로 움직이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IP 산업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IPX(전 라인프렌즈)는 NFT를 단순 판매가 아닌 ‘공동 홀더(Co-holder)’ 모델로 재해석했다. 팬이 IP의 일부를 소유하고, 직접 2차 창작이나 밈 생성에 참여해 브랜드 가치를 함께 키우는 구조다. 이는 블록체인이 콘텐츠 산업의 수익 구조를 바꾸는 실질적 모델로 주목받았다.

이 외에도 팬 토큰의 확장성, AI 에이전트의 자율성, RWA 기반 투자 상품, 정부 스테이블코인의 효율성 등이 공통된 방향으로 수렴했다. 블록체인은 이제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모든 산업의 ‘연결 기술’로 확장되고 있다.

KBW 2025는 블록체인이 기술의 세계를 넘어 제도, 금융, 문화와 결합하는 현실의 무대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기업들은 ‘블록체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이 기술이 실제로 어떤 가치를 만드는가’를 묻는다.

스테이블코인, RWA, 커스터디, AI는 그 중심에 있다. 이 네 가지 축은 규제와 신뢰, UX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실에서 작동하는 블록체인”을 구축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대중은 이미 시장에 들어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안전하고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질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구조다. KBW 2025는 바로 그 다음 단계, 블록체인이 현실 경제의 문법으로 말하기 시작한 첫 장면을 보여준 컨퍼런스였다.

Ian

작년에 이어 KBW를 다시 찾았는데요.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시대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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