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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골짜기 그 너머, 버추얼 휴먼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을 아는가?

일본 도쿄 공업대학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인간을 어설프게 모방한 존재를 보면 불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로봇 공학뿐만 아니라 게임, VR(Virtual reality)업계에서는 불쾌한 골짜기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인간의 모습을 보다 온전히 복제하기 위해 기술 발전에 힘쓴 결과, 노력의 결실이 우리 삶에 다가오고 있다. 오늘은 버추얼 휴먼 사례를 통해 기술 발전이 어떤 형태로 열매 맺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들어는 봤나, 버추얼 휴먼                             

버추얼 휴먼은 실존 인물이 아닌, 인공지능과 그래픽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의 인간을 뜻한다. 국내에도 여러 버추얼 휴먼이 존재한다. ‘로지’는 한국 최초의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표방하는 SNS 팔로워 15만 이상의 가상 인플루언서 겸 모델이다. ‘한유아’는 YG의 모델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된 버추얼 인플루언서다. 2023년 3월, 3번째 싱글 앨범인 <보라빛 향기>를 발매하기도 했다. 롯데 홈쇼핑의 쇼호스트이자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루시’도 빼놓을 수 없다. 로지는 영화 배급사이자 연예 기획사인 싸이더스에서, 한유아는 <로스트 아크>, <크로스 파이어> 등의 게임 개발사 스마일게이트에서, 루시는 롯데에서 제작했다.

버추얼 휴먼 ‘한유아’

이 밖에도 <배틀 그라운드>로 유명한 크래프톤의 ‘애나’, 넷마블의 ‘리나’, 넵튜의 ‘수아’ 등 여러 버추얼 휴먼이 존재한다. 메이저 게임사에서도 버추얼 휴먼을 제작하고 육성하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이들은 왜 버추얼 휴먼에 이토록 진심인 걸까?

대체 왜 이렇게 진심인데?

버추얼 휴먼 개발사 디오비 스튜디오의 오제욱 대표는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기존 연예인에 비해 갖는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버추얼 휴먼은 기존의 인플루언서와 달리 논란이나 개인의 일탈과 같은 리스크가 없다.
덕분에 기업 메시지를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 디오비 스튜디오 오제욱 대표-

스마일게이트와 함께 버추얼 휴먼 ‘한유아’를 공동 개발하고 있는 자이언트스텝에서는 버추얼 휴먼이 갖는 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버추얼 휴먼의 가능성을 보다 높게 점쳤다.


버추얼 휴먼을 연예인이나 모델로 활용할 경우 스케줄 관리, 개인의 활동 범위를 뛰어넘는 다양한 콘텐츠 제작, 개인 활동에 따른 리스크 감소 등의 이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만으로 기존의 인간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버추얼 휴먼의 장점은 인간이 할 수 없는 분야에서 두드러질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버추얼 휴먼 콘텐츠는 ‘얼마나 실제 사람과 비슷한지’를 넘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어떤 장점을 줄 수 있는지’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 자이언트스텝 –

인간에겐 없고 버추얼 휴먼에겐 있는 것

글로벌 가구 기업 ‘이케아’가 일본의 버추얼 휴먼 ‘imma’와 협업한 적이 있다. 이 사례에서 인간이 할 수 없는 버추얼 휴먼만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3월 일본 하라주쿠 거리의 쇼룸에서 3일간 특이한 이벤트가 진행됐다. 행인들은 투명한 창을 통해 쇼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 안에는 이케아의 가구들 사이 분홍색 머리를 한 여성이 있었다. 그 여성은 무려 3일간 쇼룸을 벗어나지 않은 채 음식을 먹고 잠에 들며 때로는 행인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 분홍 머리 여성은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사람들은 ‘저건 사생활 침해나 학대 아니야?’와 같은 의문을 가졌다. 인간과 흡사한 외형이 행인들로 하여금 ‘imma’가 당연히 평범한 모델일 거라고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버추얼 휴먼 가운데 영화 <Her>에서 나온 것 같은 고도의 인공지능을 가진 개체는 없다. 때문에 버추얼 휴먼은 행인들이 제기한 인권 침해 지적에서 아직까지는 자유로운 것으로 보인다. 여러 제약에서 자유로운 덕분에 기업의 충실한 메신저로 자리한다는 점이 많은 회사에서 버추얼 휴먼에 막대한 시간과 예산을 쏟는 이유다.

버추얼 휴먼의 장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음
여러 법적인 제약에서 자유로움
기성 모델·인플루언서와 달리 일탈과 불성실 등의 리스크가 없음

가능성, 그 너머를 바라볼 때

일각에서는 버추얼 휴먼의 무한한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엠넷의 음악 프로그램 <AI 음악 프로젝트 – 다시 한번>에서는 혼성 그룹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 故 임성훈 씨의 모습과 목소리를 AI 기술로 재현해 놀라움을 자아낸 바 있다. 네티즌은 화면 속 故 임성훈 씨를 보며 그립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지만, 고인의 동의 없이 마치 죽은 이를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부적절하지 않냐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AI 음악 프로젝트 – 다시 한번

인간과 흡사한 버추얼 휴먼의 겉모습에 대한 현 인류의 감탄은 점차 잦아들 것이다. 인간이 스마트폰, 인공지능 스피커, 사물인터넷(IoT)에 적응했던 것처럼 버추얼 휴먼이 우리 삶 가까이에 자리 잡는 것도 예전만큼 요원한 일은 아니다. 이제 버추얼 휴먼에 대한 주요 논의는 ‘얼마나 인간과 닮은 겉모습을 지녔는가?’보다는 놀랍도록 발전하는 기술의 오용을 막을 제도적 장치에 대한 단계로 옮겨 가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정현륜 기자

AI의 가능성을 짧은 기사에 담아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일이지만,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소개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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