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여덟 시간 이상의 격무… 손가락과 손목, 팔꿈치와 어깨가 뻐근해질 때까지 타이핑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제 그만 멤브레인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기계식 키보드에 입문하다

기자가 본격적으로 기계식 키보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을 즈음이다. 그전까지 기자에게 기계식 키보드는 PC방에서만 사용하는, 시끄럽고 조금은 화려한 입력장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깊게 들어와 버렸을까?

당시 기계식 키보드는 사무실에서 퇴출 1순위. 모두의 노여움을 한 몸에 받는 대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용하는 사람이 강하게, 그리고 빠르게 타건하는 스타일이라면 그것이 만들어내는 소음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대급 역병으로 집 안에 갇힌 지금이 키보드를 찍먹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무엇보다도 키보드를 바꾸는 사소한 변화가 기자에게 찾아온 매너리즘에도 좋은 처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제일 처음 구매한 한성컴퓨터의 GK868B!
정확히 말하자면 기계식 키보드가 아니라 정전용량 무접점 키보드이다.

한성GK868B

두 가지가 무슨 차이냐 하신다면, 입력 방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 정전용량 무접점 키 구조
▲ 기계식 스위치의 구조

장점 가득한 무접점 키보드

무접점 키보드는 개별 스위치의 접점을 통해 입력하는 방식이 아니라 러버돔 밑에 깔린 스프링이 기판에 닿아 입력이 되는 방식이다.

부드러운 러버돔을 누르며 타건하는 방식 덕분에 무접점 키보드 특유의 키감을 느낄 수 있는데, 혹자는 쫀득한 것을 누르는 느낌이라고 하기도하고, 또 어떤 사람은 도각도각한 키감과 구분감 때문에 초콜릿을 부러트리는 느낌이라고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사각사각한 타건음과 부드러운 키의 반발력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한성의 무접점 키보드로 키보드의 맛(?)을 알아버린 기자는 ‘카드 슬래시’를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들이게 된 두 번째 키보드가 한성의 TFG ART. 키보드의 하판이 통 고무로 되어있어 타건할 때 나는 ‘텅텅거리는 소음’을 잡았다고 설명이 되어있었다.

TFG ART 키보드

그리고 해외 펀딩으로 구매한 세 번째 키보드 Keychron K6. 이쯤부터 키보드 모드(mod)와 커스텀 키보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Keychron K6 키보드

키보드 모드(Mod)란?

키보드 모드(Mod)는 키보드 몸체 안에 흡음재를 넣거나 스위치를 교체하는 등 키보드의 키감이나 타건음을 개선하기 위해 개조하는 행위 전반을 의미한다.
커스텀 키보드는 키보드 몸체와 스위치를 꽂는 보강판의 소재부터 스위치의 종류, 키보드의 색상 등 키보드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을 내 입맛대로 골라 조립하는 것이다.

키보드는 배열도 중요하다

기자는 어렸을 때부터 평범한 것보다 비범한(?) 것에 끌렸는데, 키보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웹서핑을 하다가 알게 된 작은 키보드 BM40를 구매하게 됐다.

▲ 작고 귀여운(?) BM40

BM40는 40% 배열의 키보드이다. 오쏘리니어(ortholinear)라고 불리는 배열로 되어 있어서 기존의 키보드와는 다르게 키 배열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모습이다. 타건시 손가락의 피로를 확실하게 줄여준다고 해서 구매했는데, 정말 만족스러웠다. 온종일 복붙을 해도 새끼손가락에 피로가 느껴지지 않아!

키보드의 배열은 풀배열 기준으로 퍼센티지로 구분하여 통용되는데, 아래 이미지를 참고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오쏘리니어는 BM40과 같이 모든 키가 가로, 세로 똑같이 정렬되어 있는 배열을 가리킨다.
Keyboard Size Guide_The Gaming Setup scaled

BM40으로 오쏘리니어 배열에 입문하여 푹 빠지게 된 기자는 이어서 70% 키보드 XD75를 구매했고, 이어서 Preonic이라는 50% 배열의 키보드를 구매했다. Preonic은 현재 회사에서 전투용으로 사용하는 최애 키보드가 되었다.

▲ Alice 배열 MAJA 키보드

그리고 중간에 Alice 배열(사진과 같은 배열을 Alice 배열이라고 한다)인 MAJA를 구매했다.

커스텀 키보드의 끝판왕! 스플릿 키보드

키보드를 찾아 인터넷을 헤엄치던중 스플릿 키보드(Split keyboard)에 대해 알게 되었다. 스플릿 키보드는 말 그대로 한 개의 키보드가 두 쪽으로 쪼개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키보드를 타건 할 때처럼 어깨와 손목을 모으지 않아도 돼서 타건 시 피로감이 훨씬 덜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기사에서 꼭 소개하고 싶었던 키보드가 바로 이 스플릿과 오쏘리니어 배열이 합쳐진 키보드, Corne-ish Zen이다.

▲ Corne-ish Zen 키보드

Corne-ish Zen은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배열 ‘Corne’를 사용하고 있는 블루투스 스플릿 키보드이다. 캐나다의 판매자가 직접 설계하고 조립하여 Group-buy 형식으로 판매했고, 주문 후 받아보기까지 꼬박 8개월가량이 걸렸다.

커스텀 키보드는 보통 선 주문 후 생산으로 판매된다. 주문한 키보드를 받아보기 위해서 짧게는 3~4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도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주문하는 것을 Group-buy라고 부른다.

이 키보드를 꼭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 친구가 개인적으로 볼 때 스플릿/오쏘리니어 커스텀 키보드의 끝판왕이기 때문이다. 충전할 때를 제외하고 완전히 무선(블루투스)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얇고 가벼워서 전용 케이스에 넣어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 있다.

▲ 전용 케이스에 넣어둔 모습(태블릿 PC를 위해서 키보드를 사는 것이 아녀…키보드를 위해 PC를 사는거제…)

기자가 보기에 Corne-ish Zen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은 밖에서 사용할 때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키보드를 사용하기 위해서 태블릿 PC를 구매했다(!?). 뭔가 바뀐 것 같다면 착각이다…

내킬 때마다 카페에서 태블릿 PC와 Corne-ish Zen을 꺼내 두고 이것저것 타이핑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무척 여유로운 현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맛에 키보드 덕질하지!

Corne-ish Zen은 키 매핑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글자가 새겨져 있는 키캡을 체결해두면 오히려 혼란스러워져서 각인이 없는 키캡을 끼워 두고 사용하고 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데 어떻게 사용하나 싶겠지만 생각보다 금방 익숙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제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배열을 직접 설계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 XD75의 키매핑 예시

잠시 쉬어가는 시기

사실 앞에 소개한 Corne-ish Zen을 들이고나서 기자의 키보드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은 좀 수그러든 상태이다. 키보드에서 얻을 수 있는 심미적인 만족감과 기능적인 만족감을 모두 얻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키보드의 세계는 끝이 없기에…

똑같은 업무 메일 작성도, 키보드와 함께라면 우린 최고야!

그런 의미에서 이 지루한 글을 끝까지 읽은 그대도 ‘키보드’에 한 번 입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사무실에서는 저소음 스위치를 사용하는 매너를 지키는 키덕이 되자!

김아영 기자

다음 키보드는 '해피해킹'으로 하겠습니다.
아무도 나 말리지마!
키보드에 투자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자 개인의 책임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