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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ing is fun!
‘드워프 포트리스’

패배란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응원하는 야구팀이 연패를 한다던가, 등급제가 있는 게임들에서 순위가 떨어진다던가… 적어도 긍정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기쁨을 동반하는 행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패배를 즐겁게 여기라(Losing is fun!)’는 게임이 있다.

바로 ‘드워프 포트리스‘다.

드워프 포트리스’는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 장르가 생소한가? 어린 시절 한 번쯤 플레이해 봤을 ‘롤러코스터 타이쿤’, ‘세틀러’ 시리즈, ‘심시티’가 대표적인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 게임은 드워프들과 그들의 요새 관리에 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드워프(dwarf: 난쟁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드워프 포트리스’에서는 엘프, 고블린, 마법과 악마 등 서양식 판타지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세상의 시작은 아주 휑하다

‘드워프 포트리스’의 시작은 특별하다.

유저가 원하는 설정들을 몇 가지 해두면 드워프들과 요새가 세워질 세상을 시뮬레이션 해주기 때문이다. 1,000년이 흘러 강성한 문명들이 세워진 세상에서 지낼 수도, 100년이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다양한 부족들과 신화 속의 괴물들을 실제로 마주하며 함께할 수도 있다. 설정된 기간 동안 발생한 사건들로 250년대에 세워진 융성한 문명이 400년대에 멸망해버려 폐허만 남았을 수도 있고, 어떤 정신 나간 마법사가 사악한 영토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혹은 지하에 악마들이 둥지를 틀고 비운의 문명을 잡아먹기를 위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시간에 따라 문명들은 생겨나고 사라지며, 각종 사건들이 발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상에서 유저는 원하는 땅을 골라 정착할 수 있다. 눈으로 덮인 설원일 수도, 돌들과 바위로 덮인 곳일 수도 있다.

정착 시 나타나는 메시지, Stirke the Earth!

정착이 끝나면 7명의 드워프들과 몇 가지 물품들을 가지고 시작하게 된다. ‘문명을 세운다’라는 명예로운 임무를 하사받은 존재들이다. 이 드워프들을 이끌고 살아남아, 요새를 발전시키면 또 다른 드워프 이민자들이 합류하게 되고 다른 문명에서도 좋던 나쁘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럴듯하게 차려진 요새

역사적으로 공동체가 세워지면 사람들이 뭉치게 되고 필연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무수한 사건들이 발생해왔다. ‘드워프 포트리스’는 그런 요소들을 구현해 내어 정교하게 엮어냈다. 전염병에 의한 재앙, 타 종족의 침략, 아무것도 아닌 사건이 일으킨 나비효과. 이것 외에도 많은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노력해 세워진 요새와 드워프들을 멸망시키기도 한다.

게임 플레이 중의 한 일화이다.

어떤 드워프가 작업 중 무언가에 홀려버린 적이 있다. 위험하다고 느껴 드워프와 함께 작업 공간을 봉쇄해두고 기억 속에 잊어 두었다. 이후 작업하다가 실수로 그 봉쇄 지역을 뚫어버리게 되었고, 시체에서 나온 악취가 요새의 곳곳을 뒤덮어 그로 인해 드워프들에게 광증을 일으키게 되었다.

▲ 끔찍한 악취에 의해 요새가 뒤덮이며 드워프들이 광증에 사로잡힌 모습

그러한 혼란 속에서 한 엄마가 물에 아기를 빠뜨리게 되고, 그 아기는 결국 익사해버렸다. 미쳐버린 아기의 엄마는 숙련된 드워프 전사에게 달려들었고 드워프 전사는 ‘적합한 자기방어’를 위해 아기 엄마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이로 인해 더욱 많은 광증을 유발하게 되었고, 더 많은 광증을 일으킨 드워프들은 스스로 물에 빠지거나, 드워프 전사에게 달려들거나 미끄러져 유명을 달리해버리는 등 문화와 무역의 중심지였던 요새에는 오직 한 명만이 남게 된다.

▲ 홀로 남은 드워프 전사

광증으로 달려드는 드워프들의 목을 날려버려 최정예가 되어버린 전설적인 드워프 전사 홀로 말이다.

이 일화에서 알 수 있듯, 단순히 요새를 확장시키고 드워프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드워프들은 감정의 변화가 격해질 수도 있고, 물건만이 아니라 사람도 들고 다닐 수 있으며, 물에 빠질 수도 있고, 시체를 적합하지 않게 관리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훈련을 통해 숙련된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무언가에 홀릴 수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은 게임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다양한 경험을 겪게 해준다.

저주받은 지역에서 도축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잘린 신체 부위들이 귀신들려 돌아다니며, 공격한다. (방금 도축한 닭의 다리나 물고기의 머리가 달려든다고 생각해 보라.) 애완동물들에게 적절한 중성화를 하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요새는 동물 밭이 되어버려 식량이 부족해질 것이다.

완벽하다 여긴 것들이 순식간에 망해버리는 모습은 어떨까? 허망할까? 기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패배하기 전까지는 승리를 거듭한 것이라고. 요새를 멸망시켰다는 것은 요새를 성장시켰다는 것이며, 애완동물을 중성화 시키지 못했다는 것은 그전까지 드워프들과 애완동물 모두가 풍족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반증이다.

패배를 위한 여정.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사건과 마주하는 것. 과거 자신의 실수를 대면하는 것이야말로 ‘드워프 포트리스’의 강렬한 내적 동기라고 말할 수 있다.

엄청난 크기의 촌충이 드워프들을 몰살시키더라도, 유저는 경험을 간직한다

우린 게임에 숙달되어 정점에 도달할 때 쉽게 질려버리곤 한다. ‘드워프 포트리스’는 복잡한 상호작용들을 통제하고 그런 것들을 학습해낸 자신이 숙달, 정점에 도달한 것 같다고 느낄 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혹은 스스로의 호기심, 도전에 의한 패배를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패배는 강렬한 경험이란 보상을 준다. 정복할 수 있는 패배가 넘쳐나는 게임인 것이다. 싫증 날 틈이 없다.

‘Losing is Fun!’

‘드워프 포트리스’의 패배는 게임을 지속하는 동력원이 된다. 게임을 진행할수록 요새는 강성해질 것이고, 유저 또한 숙달되어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패배할 것이고, 반복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워프들과 함께 패배를 향해 나아가는 건 어떨지, 독자들에게 제안해 본다.

전성진 기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는 것은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플레이를 회고하며 글로 작성하는 경험이 뜻깊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게임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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