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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형 근거리 비행 시대를 기대하며

지금은 도로에 전기 자동차가 흔해진 시대지만 10년 전만 돌아봐도 격세지감을 느낀다. 사실 당시에도 전기 자동차를 위한 기술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휴대전화에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게 된 것이나, CD플레이어에 DC모터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30년도 더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도 가정에 있는 오래된 세탁기들을 뜯어보면 모터 중 상당수는 전기 자동차에 쓰이는 것과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BLDC모터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당신이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다.

이번 기사에서는 전기차를 넘어 가까운 미래로 다가오고 있는 전기 비행기에 대해 소개한다.

리튬 배터리의 발전이 가져온 전기 자동차 시대

전기 비행기를 다루기에 앞서 전기 자동차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전기 자동차나 전기 비행기 모두 기술적인 원리는 같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의미에서 전기차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지만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었던 존재였다. 하지만 전기차 상용화를 진지하게 추진하는 테슬라가 등장하자 시장이 급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초기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기존 완성차 업체들도 현재는 대부분이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지금의 전기 자동차 시대가 다가오게 된 것은 리튬 배터리의 발전이 한몫했다.

사실 대용량의 리튬 배터리는 취미의 영역에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당한 고가였지만 기술 발달로 가격은 점차 내려갔고 반대로 성능은 점점 좋아져서 2009년쯤에는 3s1p 11.1v 1300mah 배터리를 개당 7.5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기자는 압도적인 성능을 현실적인 가격에 만났다고 감격하였으나… 2015년쯤 동일 스펙 배터리의 가격이 개 당 1.5만 원 아래까지 내려갔다.

▲ 모형 비행기에 사용되는 22.2v 5000mah, 50급 기체용 배터리.
(출처: 엘레파츠-전자부품쇼핑몰)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배터리 기술과 별개로 전기, 그 자체는 동력원으로 제어의 간편함이나 에너지의 전환 효율 등 여러 장점이 있기에 이미 기차와 선박에 사용되어 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정해진 코스를 따라 달리는 기차나 전차 등에는 전기를 전선으로 공급했고, 선박의 경우에는 에너지 관리와 구동계의 단순화를 위해 배에 발전기를 탑재하여 발전된 전기로 모터를 추진하는 전기 추진 시스템이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원자력을 사용하지 않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군함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발전기가 화석연료를 전기로 전환하는 효율이 높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전동 모터는 구동 수단으로서 이미 그 성능과 장점이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다.

▲ KDDX에 도입 검토중인 전기 추진 시스템. 화석 연료 엔진은 발전만 하고 추진은 모터로만 하고 있다. (출처: https://www.gereports.kr/)

다음은 전기 비행기 시대?

무게에 있어 자유로운 선박, 코스가 일정한 기차에 이어 자동차가 전동화되었으니 이제 다음 단계는 비행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리튬 계열 배터리와 수소 연료 전지가 상업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무게 대비 에너지 밀도는 높아지고 생산 단가는 내려갈 것이며, 배터리의 발전은 더욱 가속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비행기 또한 실용성 확보 단계를 앞두기 시작했고, 배터리의 발달 수준도 충분해 앞날은 밝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미 많은 기업이 현재의 배터리 조건에서 전기 비행기를 개발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의 회사는 부자들을 위한 비싼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이거나,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콘셉트 기체를 만들어 보는 회사긴 하지만, 진지하게 대중적인 이용을 전제로 접근하고 있는 회사들도 있다. 회사의 규모나 꾸준함을 기준으로 미루어보면 에어버스와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Air bus가 개발한 전기 비행기들 (출처: https://www.airbus.com/)

에어버스는 보잉과 함께 대형 상업 여객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2대 글로벌 기업 중 하나로서 여객기 시장에 진지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기존의 화석 연료 비행기를 전기 비행기로 대체하기 위한 연구를 2010년부터 진행 중이며, 콘셉트 비행기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 에어버스의 비전인 E-FAN X의 CG, 전동 덕트로 대형 여객기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표방하고 있다. (출처: https://www.airbus.com/)

아직은 효율이 높지 않은 전동 덕티드 팬을 채용해서 발전시키고 있는 E-Fan 계열 콘셉트 기체들이지만 이로 미루어서 짐작하건대 터보팬 엔진을 대체하여 최종적으로는 현재의 대형 장거리 여객 수송을 전동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에어버스의 도심 근거리 수직이착륙 콘셉트 기체 NEXT GEN (출처: https://www.airbus.com/)

소형 여객기를 만들겠다는 에어버스

소규모 기체의 기술 검증에서 출발하여 소형 여객기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에어버스의 행보가 만약 성공한다면, 탄소 배출을 감축시키고 항공권 가격도 합리화 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보기에 기술적으로 효율이 더 높은 수소 배터리나 지금보다 무게 대비 에너지 밀도가 높은 전고체 배터리 등이 등장해야 현실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근거리 도심 교통 수단을 보는 현대차

이에 비해 현대차는 좀 더 가까운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도 200km 내외의 항속거리를 가진 소형의 수직 이착륙 항공기에 대한 개발이 여기저기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출처: https://www.hyundai.com/)

현대차는 소형 항공기를 버스 터미널 수준의 작은 공항 및 자율 주행 자동차와 연계하여 근거리 도심 교통수단으로 구성할 복안을 가지고 있다. 현대차의 이러한 계획은 2020년에 우버(Uber)와 도심 항공에 대한 파트너십을 맺고 콘셉트 항공기 SA-1을 공개하며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 항공기는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형태로 항속거리는 약 100km, 탑승 인원은 4인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프로펠러는 수직 방향으로 기체를 이·착륙시키는 목적으로만 장착되어 있고, 다른 프로펠러는 추진력을 위해 앞 방향으로 장착되어 있다. 또한 여러 프로펠러로 추진력이 분산되어 적은 소음과 높은 에너지 전환효율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당시 공개한 현대차의 전동항공기 SA-1의 실물

화석 연료에서는 프로펠러를 분산한다는 것이 엔진의 규모와 기계적 복잡도의 증가로 상당한 제약이 있었지만, BLDC 전동 모터는 회전수를 전기적으로 간단하게 통제할 수 있기에 이러한 설계가 실현될 수 있었다.

물론 기체 자체만으로 놓고 보면 특출나게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장 소규모의 기업에서 제작한 더 좋은 스펙을 가진 기체들이 있다. 예를 들어 Joby Aviation의 S4는 파일럿 1인에 승객 4인이 탑승 할 수 있고 항속거리가 240km에 이르는 수직 이·착륙 기체를 개발 중이다.

그러나 현대차의 비전이 뛰어난 점은 기체 자체만이 아니라, 도심 공항을 이용한 전반적인 도심 항공 플랫폼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 Joby Aviation S4, 실물 사진. 출처: Joby S4 hits 205 mph, flying further and faster than any eVTOL to date (newatlas.com)

지금까지 항속거리 1~200km라고 하면 기존 항공기 개념 측면에서는 쓸모가 없는 거리였다. 왜냐하면 기존 항공기는 수백 킬로미터 이상의 거리를 움직이고, 때로는 수천 킬로미터를 움직여 승객의 시간을 아껴주는 것에 메리트가 있는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100km의 항속거리를 장거리 이동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 경기도 남부에서 전라북도까지만 가도 200km 정도의 항속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도 남부에서 경기도 북부로 간다면 어떨까? 경기도 북부에서 강남으로 간다면? 서울 도심의 교통체증을 회피하여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 기존의 화석 연료 비행으로서는 도저히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 이동이었지만, 이제는 가능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비행기를 통한 이동은 왜 비싼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비행기는 많은 연료를 소비하고, 정비 및 운용에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하며, 이착륙을 위한 대규모 공항 시설이 요구된다. 이렇게 운영 및 유지에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비쌀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비행기는 초장거리 또는 육로 이동이 불가능한 경우에 한해서만 효율적인 이동수단인 것이다.

그렇다면 전기 비행기는 어떨까?

우선 전기 비행기는 비싼 화석 연료 대신 저렴한 충전을 이용한다는 장점을 가진다. 또한 도심에서 도심으로 거점 이동을 하는 공항 건설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존의 비행기와 달리 도심에 건설이 가능한 이유는 활주로가 불필요하고 소음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전기 비행기는 한 번에 50km~80km 떨어진 또 다른 도심 공항으로 이동하며 승객은 해당 공항에 연계된 다른 대중교통으로 목적지까지 움직일 수 있다.

▲ 현대차의 도심 공항 콘셉트 아트. 자율주행 전기차와 연계되어 있다. (출처: https://www.hyundai.com/)

게다가 AI와 지상 통제소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운용하면 인력 측면에서도 기존보다 낮은 허들이 요구된다. 심지어 기체의 물리적인 구동부는 구조적으로 단순한 DC 모터에 의해 작동하고 있어 정비 소요는 터보팬 엔진에 비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최근 현대차는 영국의 코번트리에 ‘어반-에어포트(Urban Airport)’라는 기업과 협업하여 에어 택시 전용 공항을 건설 중이다. 이는 최초의 에어 택시 공항이며, 전기 비행기 전용의 소규모 도심 공항이다.

▲ 현대차가 코번트리에 건설할 계획인 공항, 에어원. (출처: https://www.hyundai.com/)

교통체증을 벗어날 미래를 생각하며…

만약 이번에 영국에 건설하는 이 공항이 성공적이라면 다른 공항들도 속속 건설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휴전국이기 때문에 항공에 대한 규제가 상당히 엄격하지만, 유망한 미래 산업인만큼 효율적인 규제 완화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도 도심의 교통체증을 벗어나 전기 비행기를 타고 유유히 이동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민준홍 기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싱크루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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