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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뮤덕 생활②
알쓸뮤잡📖

지난 기사에서는 ‘뮤지컬’이란 장르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혹시 영업이 성공하였을지도😎) 뮤지컬을 본격적으로 즐기기에 앞서 알아두면 쓸모 있을 뮤지컬 잡학사전을 준비했다. 일명 알쓸뮤잡!


대극장 VS 중·소극장

흔히 ‘연극’하면 매우 혼자 어두컴컴한 소극장에서 독백하는 장면을, ‘뮤지컬’ 하면 거대한 무대에 수십 명이 나와 화려하게 춤추고 떼창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런 ‘시끌벅적함’의 차이는 연극이나 뮤지컬이냐가 아니라 대극장 공연과 소극장 공연의 차이에서 온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projectgroup_ILDA)
뮤지컬 <위키드> (https://www.wickedthemusical.co.kr/)

연극, 뮤지컬은 ‘공연 기간’‘좌석 수’에 따라 구분된다.

‘Open run’과 ‘Limited run’은 공연 기간에 따라 나뉜다. 쉽게 말하자면 리미티드 런은 시즌제 작품, 오픈런은 ‘복면가왕’, ‘놀라운 토요일’ 등처럼 끝을 정하지 않고 공연하다 수요에 따라 폐막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좌석 수는 ‘중·소극장’과 ‘대극장’을 구분 짓는다. 좌석 수가 숫자가 400석 이하면 소극장, 이상이면 중극장, 1,000석 이상이면 대극장이다.

공연한 편 보는 데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냐고? 몰라도 된다. 하지만 알면 왠지 유식해 보이지 않는가…는 농담이고 뮤지컬을 즐기기에 앞서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극장에 따라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극장에선 웅장한 오케스트라에 앙상블의 합창과 춤이 어우러진 화려한 무대를 볼 수 있다. 일명 자본의 맛이랄까. 아파트도 뽑아낼 것처럼 쩌렁쩌렁한 성량을 느껴보고 싶다면 대극장 뮤지컬이 딱이다. 그러나, 관객과의 거리가 먼 만큼 섬세하기보단 굵직굵직한 표현이 많아 다소 과장되게 느껴질 수 있다. 뮤지컬에선 풍부한 연기로 좋은 평을 받는 배우가 드라마에선 어색하단 말을 듣곤 하는 게 이런 스타일의 차이 때문이다. (물론 조승우나 전미도처럼 무대 연기와 매체 연기를 모두 잘하는 배우도 있다!)

소극장의 연기는 훨씬 섬세하고 담백하다. 소극장은 객석과의 거리가 무척 가까운 만큼 작은 몸짓, 호흡까지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된다. 노래도 가사 본연의 감정을 살리는 데 집중한 자연스러운 접근이 많다. 최근 영화, 드라마에서 활약하는 뮤지컬 배우의 대다수가 대학로 중소극장에서 주로 활동했다는 걸 떠올려 보면 이런 차이가 조금 더 와닿을 것 같다.

중·소극장 작품은 오케스트라 대신 MR을 주로 사용하며 무대 장치 변화가 거의 없다. 배우도 대개 6명 이하의 소수로 구성되기 때문에 웅장한 중창과 화려한 무대를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기자는 연극보단 뮤지컬을 주로 보는 뮤지컬 덕후이기에 연극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극도 비슷하다.)

내한 공연 > 라이선스 > 창작 뮤지컬 ?

라이선스 작품, 일명 ‘라센’은 외국에서 만든 작품을 번안하여 한국 배우들이 공연하는 것을 말한다.

종종 ‘한국인이 금발 가발 쓰고 외국인 연기하는 게 너무 어색해요! 그래서 라이선스 작품은 못 보겠어요!’ 하는 사람도 있다. 취향이니 존중한다. 하지만, 무조건 내한 공연이 최고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오리지널’, ‘첫 내한’ 등의 문구가 붙으면 관객은 당연히 현지에서 활약하는 배우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현지에서 메인으로 공연했던 배우가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적도 없는 투어 팀이나 얼터 배우를 세운다. (심하면 아예 막 데뷔한 신인인 경우도 있다) ‘한국에 자주 올라오지 않는 작품이라 보고 싶어!’, ‘원어의 맛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어!’ 하는 경우엔 추천하나, ‘내한이 당연히 가장 잘하겠지!’ 생각한다면 아쉬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찐 브로드웨이 메인 배우들이 모두 모인 레전드 내한 <시카고(2017)> 

한국 창작 뮤지컬에도 뛰어난 작품이 많으니 꼭 ‘해외 대작’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프랑켄슈타인>, <웃는 남자> 등은 라이선스 작품 못지않게 화려하고 웅장하며, <팬레터>,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한국적인 감성을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에 잘 녹인 뛰어난 작품성을 자랑한다.

탄탄한 팬덤의 한국 창작극 <프랑켄슈타인>

라이선스 작품은 작품의 모든 것을 그대로 들여오는 ‘레플리카’ 방식과 일부만 사와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다시 연출하는 ‘논 레플리카’로 나뉜다.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2022~)>, <드라큘라> 등은 대표적인 논 레플리카 성공 사례로 꼽힌다. 정작 브로드웨이에선 금방 막을 내린 <지킬 앤 하이드>가 한국에선 내년으로 20주년을 맞이하는 대박 작품으로 불리니 말이다. <드라큘라>의 화려한 회전 무대나, <데스노트>의 현대적인 LED 영상 무대도 한국 버전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다.

결론 : 각기 다른 매력이 있으니 굳이 줄 세울 필요 없다!

똑같은걸… 또 봐? 회전과 다작

연극·뮤지컬 덕후는 보통 둘로 나눠진다. 같은 작품을 반복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 (일명 ‘회전러’), 반복 관람보단 다양한 작품을 찾아 극장을 돌아다니는 ‘다(多)작러’.

회전러
다작러
시작은 사뭇 다르나 결말은 같다. 다작회전러.
일종의 최종 진화형이랄까.

물론 약간의 성향 차이일 뿐, 대부분의 뮤덕은 회전러이자 다작러이다. 작품이 2~3년 주기로 올라오는 장르의 특성상 이번에 못 보면 다음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페라의 유령>은 2010년 두 번째 시즌 공연 이후 다음 시즌이 올라오기까지 13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좋아하는 작품이 많이 올라오는 때엔 다작러도 회전을, 마음 가는 작품이 없을 땐 회전러도 그동안 보지 않았던 작품을 돌아보며 다양한 관람을 하는 게 보통이다. 모든 것이 라이브이기에 매일 매일이 한정판이다. 이런 점이 회전러들을 대거 양성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는 맛이 무서운 거야! 재관람 문화

반복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이 다수를 차지하기에, 몇년 전까지만 해도 대극장, 소극장 할 것 없이 많은 제작사들은 ‘재관람 할인’과 ‘재관람 혜택’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왔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로 점차 모습을 감춰 현재는 대학로 소극장 중심으로 남아있다.

재관람 할인: 대극장의 경우 10~15%, 소극장의 경우 25~30%가 일반적이(였)다.

‘재관람 혜택’은 일종의 탕수육 쿠폰 같은 거다. 일정 횟수를 채우면 그에 해당하는 혜택을 준다. 보통은 엽서, 할인권, 실황 OST 등이나, 대본집, 포토북, 뱃지 등 최근엔 점점 그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보통은 2회차부터 발급이 가능하나, 티켓 한 장으로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기념 삼아 하나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재관람 카드: 덕후의 심장을 뛰게 하는 귀여운 도장들!
엽서, 할인권, 배우 폴라로이드, 실황 OST 등 종류가 다양하다. 기록이 잘 남지 않는 장르 특성상 실황 OST가 가장 인기 있다.
 이벤트 스케줄의 예 (출처 @shownote)

재관람 카드 외에도 회전문 관객을 유혹하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 포토 카드, 악보, 대사 티켓 등의 지류를 증정하는 ‘증정 데이’, 스페셜 MD를 뽑을 수 있는 ‘럭키 드로우 데이’, 랜덤 폴라로이드 사진을 뽑을 수 있는 ‘폴라 데이’, 공연이 끝난 후 특정 장면을 시연하는 ‘스페셜 커튼콜’ 등등. (일명 스콜. 유튜브에 올라온 많은 공연 영상이 이날 찍은 것이다) 최근에는 장면을 그냥 보는 것을 넘어 함께 노래하고 소통하는 ‘싱어롱 데이’를 시행하는 제작사도 늘고 있다.

포토카드, 악보처럼 평범한 것부터 졸업장, 드럼 스틱을 닮은 연필(…) 등등 과몰입을 유발하는 다양한 증정들!

예매처에 따라 다른 디자인의 티켓을 주는 경우도 꽤 많은데, 예쁜 디자인 봉투의 경우 그 자체로도 달가운 증정이 되곤 한다.

공연 내용과 사진을 간략하게 적은 ‘프로그램 북’이 MD의 전부였던 예전과 달리, 최근엔 MD도 무척 귀엽게 나와 덕후의 통장을 털어간다.

신발공장을 배경으로 하는 극 <킹키부츠>에선 신발공장 취직 키트(…)를 굿즈로 내놓기도 했다.
기자는 특히 ‘뱃지’를 좋아한다. 가장 아끼는 건 <위키드(2021)> 뱃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익명의 덕후

마음껏 ‘영업’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이 기사가 실제 극장 나들이로 이어진다면 더 없이 뿌듯할 것 같습니다. (레미제라블, 알라딘, 디어에반핸슨 등 2024년에도 재밌는 작품이 즐비하니 추위가 싫으시다면 따뜻한 극장 나들이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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