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동년배라면 지브리 영화를 최소 한 편은 봤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OST 정도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 시절 우리의 2D남친 하울, 하쿠 © 지브리 스튜디오 공식 홈페이지

가장 많이 돌려본 영화를 고르라고 하면 기자는 지브리 영화를 꼽겠다. 어릴 적 지브리 작품들은 다른 것들과 달리 무서운 느낌이 컸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다시 보니 무서움보단 따뜻함이 훨씬 크게 다가왔다.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브리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것은 이제 서서히 먼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장장 10년 만의 지브리 장편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 번복작이자, 진짜_최종_은퇴작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신작 후기와 더불어, 기자가 지브리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으니 혹시 영화를 볼 예정이라면 주의!

🎬 시놉시스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간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던 ‘마히토’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나타나고, 저택에서 일하는 일곱 할멈으로부터 왜가리가 살고 있는 탑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히토’는 사라져버린 새엄마 ‘나츠코’를 찾기 위해 탑으로 들어가고, 왜가리가 안내하는 대로 이세계(異世界)의 문을 통과하는데…!

요즘 보기 귀한 100퍼센트 수작업 애니메이션이다! 그래서인지 지브리 사상 최고 제작비에 최장기간이 걸린 작품이라고 한다. 게다가 영화 곳곳에 감독의 과거작을 오마주한 장면들이 나온다. 제법 익숙한 장면들이 많아서 이것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편 이번 신작은 대중과 평론가의 반응이 판이하게 갈리고 있다. 평론가의 반응은 호평이 압도적이나, 대중의 반응은 ‘울다 나왔다’와 ‘졸다 나왔다’로 갈린다. 사실 기자도 영화 중반에 졸았다^^; 원체 지브리 영화가 몽환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은 맞지만, 이번 신작은 특히나 더  그렇다. 한 번 보는 것만으로는 영화의 메시지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영화를 이해하고자 여러 해석을 찾아봤는데, 동일 인물이나 장면에 대해서도 다양한 분석이 있었다. 그 덕분에 영화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에 애정이 생겼다! 참고로 기자는 유튜브 영사기 채널을 보며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었다.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봐도 좋겠다.

“ 마히토를 신비의 세계로 안내하는 왜가리와 증조 할아버지 등 주요인물의 모델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동료들입니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미야자키 감독이 애니메이션 업계로 처음 들어왔을 때 이끌어주신 분이죠. 왜가리는 저(스즈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스즈키 토시오 (지브리 스튜디오 대표) 인터뷰 중 –

위의 인터뷰도 그렇고 신작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서전에 가까운 영화다. 이번 작품의 테마가 친구 것조차 그의 친구들에게 헌정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극 초반에는 마히토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만 해도 제삼자의 입장에서 마히토 (혹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관찰하는 쪽에 가깝다. 기자도 마히토 집 주변의 산새 정도 되는 느낌으로 관람했다.

하지만 마히토가 이세계로 넘어간 이후 ‘마히토=관객’, ‘미야자키 하야오=큰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다. 큰할아버지가 마히토에게 하는 말들이 관객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들처럼 들렸다. 영화 제목에 여타 지브리 영화처럼 주인공 이름이 아닌 ‘그대’란 단어가 들어간 이유도 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너만의 탑을 쌓아라. 풍요롭고 평화로운 너만의 세계를 만들어라.”

극 중에서 큰 할아버지가 마히토에게 자신의 돌탑을 보여주며 나온 대사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우 여태 만화를 통해 자신의 인생 길을 걸어왔다. 같은 맥락으로 관객들도 자신만의 돌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길 바란 것은 아닐까 싶다. 이세계가 마냥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곳이라면 우리 인생과의 괴리감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이세계에는 잉꼬 왕처럼 내 생각과 다른 것, 펠리컨처럼 내 의도와 달리 흘러가는 것, 비정상적으로 많은 잉꼬들처럼 내가 걷잡을 수 없는 것도 섞여 있다. 이런 면이 항상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인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인생을 포기하지 말고 본인만의 탑을 쌓자는 의미가 아닐까!

결론은 이 영화를 고민하고 있다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지치고 힘든 시기에 있을수록 권유하고 싶다. 설령 기자처럼 영화를 보다 잠들어도, 그 자체가 작은 힐링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기자 또한 영화관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전 2회차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신작이 이례적으로 신비주의 마케팅을 취했음에도, 국내 기준 누적 관객 수가 200만을 향하고 있다. 그만큼 지브리 애니메이션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지브리의 매력은 무엇일까? 지브리 영화가 한두편도 아닌 데다가, 각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도 다채롭다. 그래서 최대한 간추려서 다뤄보겠다.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중 ‘어른 제국의 역습’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확성기에서 나오는 옛 음악을 들은 어른들이 일제히 어른 제국으로 향하는 트럭을 타는 장면.

어릴 적 향수를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음악이 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OST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음악이 되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음원 서비스에서는 지브리 OST를 모아둔 플레이리스트를 쉽게 볼 수 있다.

하기 싫거나 밀린 일을 처리할 때 이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두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일의 효율이 매우 올라간다! 지브리 캐릭터들의 잽싼 뜀박질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어느새 그들의 박자를 따라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실제로 지브리 OST 플레이리스트를 묶어 놓은 많은 유튜브 영상 제목에는 ‘공부’ 키워드가 포함돼 있다.

최근 Y2K 감성이 다시 돌아오면서 그때 그 시절 색감을 흔하게 접하게 됐다. 분명 충분히 발전한 기술로 정확한 색상을 나타낼 수 있음에도, 2023년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한다.

지브리 또한 아날로그 색감의 대표주자다. ‘지브리 색’, ‘지브리 보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브리 특유의 부드러운 색감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디지털에서 표현하는 선명하고 쨍한, 화려한 색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브리 영화가 주는 메시지의 따뜻함은 더 극대화된다.

© 지브리 스튜디오 공식 홈페이지

우리에게 익숙한 대다수 지브리 작품의 색감은 색채 설계팀 총감독 야스다 미치요의 작품이다.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에 평균적으로 200가지의 색이 쓰이는 데 반해, 그녀는 한 작품당 500가지가 넘는 색을 사용했다. 그중 한 가지 예로 토토로에겐 단순 회색을 넘어, 여러 색을 조합해 약 70개의 새로운 색을 만들어 입히기도 했다.

위의 색감 이야기와 더불어 기자는 지브리 영화 중 음식에 관한 장면들을 제일 좋아한다. 현실 속 음식들과는 분명 다르다. 그렇다고 ‘만화 고기’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음식들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딘가에 걸쳐 있다.

© 지브리 스튜디오 공식 홈페이지

지브리의 대다수 작품에서 이러한 군침 도는 음식 묘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먹음직스럽게 먹는 모습이 함께 나오기 때문에, 결국 영화를 멈추고 계란 후라이라도 하나 먹게 만들고 만다.

이와 관련해 한 팬이 영화 속 음식이 어떻게 그토록 맛있어 보이는지 지브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이에 스즈키 도시오(지브리 설립자)는 실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직접 만드는 음식을 만화 속에 옮겼다고 답했다. 실제 음식을 보고 그리기 때문에 그림임에도 눈앞에 놓여있는 음식처럼 식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dounan_official

실제로 일본 나고야에서 영업 중인 한 이자카야는 작년부터 나고야에서 오픈하는 지브리 테마파크를 기념해 특별한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현재도 판매 중인지, 최근에도 이자카야 공식 SNS에 지브리 메뉴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의 아빠가 한입에 넣던 그 음식도 만나볼 수 있다.

고양이의 보은

장르: 애니메이션, 어드벤처, 판타지, 코미디

러닝타임: 75분

© 지브리 스튜디오 공식 홈페이지

고양이 집사라면 반려묘와 함께 한 번쯤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알던 지브리 영화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림체도 기존 지브리 풍과 사뭇 다르고,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기존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신비롭고 심오한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도 있다. 고양이가 무엇을 의미하고 그런 것 없이, 그냥 고양이일 뿐이다. 대신  부담 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영화에선 사람과 고양이만 나오는데, 그마저도 고양이 비율이 압도적이다. 영화 속 고양이의 체형이나 움직이는 모습이 실제 고양이와 유사해서 더욱 귀엽다!

마루 밑 아리에티

장르: 애니메이션, 판타지

러닝타임: 94분

아리에티는 집게로 머리를 묶고, 귀걸이에 노끈을 묶어 이동한다. © 지브리 스튜디오 공식 홈페이지

평소 ASMR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동화 ‘엄지공주’처럼 소인 아리에티 가족이 나온다. 영화 내용은 낙관적이진 않다. 극 중 인물들이 덤덤해서 그렇지, 각자가 마주한 삶의 위기가 생존과 연관 있다. 하지만 이것을 자세히, 늘어지게 묘사하진 않아서 영화 자체는 가볍게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특히 음량을 키우고 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인공이 소인이어서 물건들이 빌딩처럼 큰데, 이것이 시각적으로도 아름답지만 일상 소리가 더 크고 또렷하게 들린다는 특징이 있다.

이번 신작의 엔딩크래딧을 보면서, 항상 만화를 그릴 것 같았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정말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아서 먹먹했다. 비록 미야자키 하야오가 없어도, 지브리 스튜디오가 지금까지처럼 따뜻한 영화들을 계속 보여주길 응원한다.

참고

김진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한 지브리의 사람들 ②, 2020-04-29
임소정, 미야자키 하야오는 ‘거짓말쟁이’? 45년 지기가 털어놓은 뒷이야기, 2023-10-25

김윤명 기자

기사를 읽는 분들이 잠시나마 행복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올 한해도 고생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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