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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 RTS 템페스트 라이징, 과거와 현재를 잇다

RTS의 몰락과 희망의 부재

30대 중후반 이상의 독자라면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스타크래프트의 전성기를 기억할 것이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즉 RTS는 당시 PC 게임계의 주류 장르였다. 스타크래프트는 물론이고, 장르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C&C 시리즈, RPG 요소를 접목한 워크래프트3, 역사 기반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까지 수많은 명작이 RTS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당시 RTS는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 중 하나였고, 특히 스타크래프트는 국내 e스포츠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RTS의 전성기를 이끈 대표적인 두 게임, C&C와 스타크래프트 (출처: steam 공식 사이트)

그러나 AOS 장르의 급부상은 RTS의 몰락을 불러왔다. 스타크래프트2로 반전을 시도했지만, 이는 AOS의 가파른 성장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더 큰 문제는 RTS 자체의 구조적 한계였다. 높은 멀티태스킹 능력과 정교한 컨트롤을 요구하는 RTS는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았다. 신규 유저들은 “이걸 어떻게 해?”라며 좌절하기 일쑤였고, 기존 유저들마저 점점 게임을 떠나갔다. 결과적으로 ‘보는 게임’으로만 소비되며, 신작 개발은 거의 중단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때 게임계의 왕좌를 차지했던 장르가 이렇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AOS 장르의 등장은 RTS를 구식의 것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출처: 리그 오브 레전드 공식 사이트)
스톰게이트가 한때 RTS의 희망으로 여겨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출처: https://store.steampowered.com/app/2012510)

최근 RTS의 부흥을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완성도 부족으로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스타크래프트2 제작진이 참여한 ‘스톰게이트’는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저조한 그래픽 퀄리티, 개성 없는 종족 디자인, 부실한 캠페인 구성 등으로 인해 흥행에 실패했다. 게다가 스타크래프트 시리즈가 여전히 서비스 중이라는 점에서, 스톰게이트는 매력적인 대안이 되기 어려웠다.

C&C의 근본을 되살리다

과거 RTS 장르는 크게 두 축, 즉 스타크래프트와 C&C로 나뉘어 있었다. 스타크래프트가 빠른 속도와 정교한 컨트롤을 중시했다면, C&C는 거점 건설과 대규모 물량전의 매력을 추구했다. 두 게임 모두 나름의 철학과 매력을 갖고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운명이 갈렸다. 스타크래프트는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나, C&C는 시리즈의 몰락을 부른 ‘C&C 4’를 끝으로 사실상 단절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템페스트 라이징(Tempest Rising)은 C&C 계열 RTS의 명맥을 잇겠다는 과감한 선언과 함께 등장했다. 이는 단순한 게임 개발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작업이었다.

저 붉은 것들이 템페스트다. 꾸물꾸물 거리는 게 약간 징그럽다.

게임의 제목 ‘템페스트’는 C&C 시리즈의 핵심 자원인 ‘타이베리움’에 대한 오마주로, 지구를 황폐화하고 전쟁의 단초가 된 자원이라는 설정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주요 진영인 GDF와 연합의 1:1 구도 역시, 연합군과 소련의 대결 구도를 가진 C&C를 연상케 한다.

게임은 두 진영의 1:1 대결로 진행된다.

게임 시스템 또한 C&C를 충실히 계승했다. 사이드바 인터페이스, 맵 상 자원 채취를 위한 수확기 시스템, 전력 관리, 유닛 간 상성, 경험치 기반 유닛 승급 등 거의 모든 핵심 요소를 고스란히 담았다. 정식 후속작이 단절된 가운데, 이러한 기반 시스템의 복원은 원작 팬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개발진의 원작에 대한 이해도다. 단순히 시스템만 베끼는 것이 아니라, C&C가 왜 매력적이었는지, 어떤 재미를 추구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많은 ‘정신적 후계작’들이 놓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이드바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멋지게 디자인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시스템 계승만으로는 템페스트 라이징의 호평을 설명할 수 없다. C&C는 과거의 영광과 동시에, 현대 게임 트렌드와 어긋나는 불편한 시스템으로 인해 몰락했기 때문이다. 불편한 자원 관리, 거점 중심의 느린 전투 흐름, 유닛 운용의 제한성 등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현대적 완성도로 새롭게 태어나다

차량이 움직이면 눈보라가 생긴다. 배경들도 상당히 디테일한 편이다.

템페스트 라이징은 무엇보다 현대적 감각의 그래픽을 전면에 내세웠다. 스톰게이트가 언리얼5 엔진을 사용했음에도 낮은 평가를 받은 것과 달리, 템페스트 라이징은 동일한 엔진을 사용했음에도 고품질 그래픽과 밀도 높은 배경 묘사로 호평을 받았다. 설원의 삭막함, 황폐화된 지구의 참상, 그리고 전차와 포격 효과 등은 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유닛의 텍스처와 광원 효과 또한 매우 우수하다.

거친 포격이 적을 부수고 땅을 흔든다.

캠페인 구성도 C&C의 실사 영상 전달 방식에서 탈피해, 고퀄리티로 모델링된 NPC와의 대화 형식으로 변화했다. 이는 영상 중심의 서사 방식보다 더 깊은 세계관 탐색과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며, 게임 몰입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NPC 그래픽이 상당히 디테일하다.

또한 ‘교리’ 시스템이라는 C&C에 없던 요소도 도입했다. 캠페인에서는 미션 종료 후 얻는 포인트로, 멀티플레이에서는 전략적 업그레이드로 활용되는 이 시스템은 전략의 다양성과 개인화를 가능하게 한다. 각 진영별로 3계통의 트리가 존재하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전략 성향에 따라 포인트를 분배하여 매판 다른 전투 구성을 만들 수 있다.

교리를 투자하여 나만의 전략을 구사하자.

여기에 ‘무기고’ 시스템을 통해 캠페인 내 영구적인 전략 버프까지 제공한다. 이는 기존 C&C의 단조로운 플레이를 크게 개선한 요소다.

여전히 남은 한계와 아쉬움

적을 막기 위해서는 여전히 벽이 필수다.

템페스트 라이징은 C&C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 RTS의 장점을 흡수하려 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C&C’라는 근간 때문이다.

C&C의 시스템은 이스포츠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를 갖고 있다. 느린 자원 수집과 방어 거점 위주의 플레이는 ‘보는 재미’가 떨어진다. 템페스트 라이징은 이를 보완하고자 거점 확장을 저렴하게 만드는 등의 시도를 했지만, 여전히 벽 설치, 방어 타워 건설 등 플레이 템포가 느린 편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시즈탱크 같은 유닛도 있다!

스타크래프트 방식의 RTS에 익숙한 유저에게 템페스트 라이징은 낯설게 다가온다. 유닛 조작, 자원 운영, 맵 운영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RTS의 주류 문법과는 거리가 있으며, 진입 장벽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이어나가야 할 가치

그럼에도 이 게임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템페스트 라이징은 단지 한 편의 RTS 게임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장르에 대한 성의 있는 회복의 시도이다. ‘정신적 후계작’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미완성의 실망을 안겼던 스톰게이트와 달리, 템페스트 라이징은 원작에 대한 깊은 애정과 진지한 태도로 개발되었다.

유닛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제작되었다.

유닛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게 제작되었고, 게임 전반에 흐르는 기조에서도 개발진의 진심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C&C라는 ‘근본’을 다시 꺼내든 선택은 탁월했다. 스타크래프트식 RTS가 여전히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지금, 대부분의 후속작은 그 구조를 모방한 아류에 머물고 있다. 반면 템페스트 라이징은 이미 명맥이 끊긴 C&C 계열의 정통을 계승하며, 원작 팬에게는 소중한 선물로, 새로운 유저에게는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C&C의 근본은 역시 기갑러시다.

RTS 장르가 대중적이지 않은 시대에도 이를 고집스럽게 이어나가는 템페스트 라이징의 결단력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표현과 잘 어울린다. 과거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현대 게임 트렌드에 맞는 개선과 실험을 시도하는 모습은 이 게임만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한다.

향후 추가될 제3의 진영 ‘베티’의 등장은 이러한 시도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완성도를 기반으로, 어떤 새로운 전략과 재미를 선보일지 기대된다.

독자 여러분도 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보기를 권한다. 스타크래프트가 보여주는 속도감 있는 전투와는 다른, 전략적 사고와 거시적 운영을 중시하는 또 다른 매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퓨전 전통요리의 맛이다.

물론 템페스트 라이징은 완벽한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장르에 대한 깊은 애정과, 과거와 현재를 잇는 균형감각은 충분히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나의 게임으로 장르 전체를 되살릴 순 없겠지만, 그 꺼져가던 불씨에 다시 한 번 온기를 불어넣은 시도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특별하다. 오랫동안 공백으로 남아 있던 RTS 장르의 자리, 그 빈틈을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내민 게임. 바로 템페스트 라이징이다.

신승원 기자

간만에 RTS의 혼을 불태웠습니다. 이거 스타크래프트1과 초기 C&C 시리즈부터 또 다시하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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