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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제 RPG의 틀을 깨다 –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 리뷰

솔직히 고민이 좀 됐다.

시간이 조금 지나긴 했지만, 워낙 화제성이 높은 게임이라 선정에 망설임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을 선택한 이유는 필자가 게임 개발 구성원이자 오랜 RPG 매니아로서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의 그래픽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는야 아티스트~!) 아티스트의 시선으로 본 이 게임의 ‘질감·조명·연출’이 실제 플레이에서 어떻게 구현되었을지, 기대와 설렘을 안고 ‘33 원정대’를 접하게 되었다.

’33원정대’는 전 세계 게이머들을 놀라게 한 작품이다. 높은 완성도와 매력적인 아트워크, 그리고 독특한 세계관으로 주목을 받았고 출시 5개월 만에 500만 장을 판매했다. 2025년 ‘GOTY’ 수상과 함께 많은 상을 받으며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한 게임이 되고 있다. 게임에 수록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3억 3천만 이상의 스트리밍 횟수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필자도 해당 시간을 보태고 있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기록들을 불과 30여 명의 인력으로 완성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놀랍다. 핵심 개발진의 규모가 작았음에도 외주 협력을 통해 높은 완성도를 이끌어낸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개발비 상승 압박을 겪는 국내 게임 업계에 새로운 방향성과 시사점을 던져준다.

게임 정보

  • 개발사: Sandfall Interactive
  • 유통: Kepler Interactive
  • 플랫폼: PS5, Xbox Series X|S, Windows PC (Steam / Epic / GOG)
  • 발매일: 2025년 4월 24일

33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

’33’은 인류의 33세 인구의 마지막 해를 뜻한다. ’34’라는 숫자가 지워지고 ’33’이 새겨지는 순간, 34세 이상의 인간은 모두 ‘재’가 되어 사라진다.

’33’이 쓰인 순간 34세였던 구스타프의 연인은 재가 되어 사라진다. 내 눈앞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사라지는 비극이라니…

주인공은 연인에 대한 복수와 인류 구원을 위해 인류의 적 ‘페인트리스’를 쓰러뜨리고자 여정에 오른다. 그러나 출발점부터 동료들이 학살당하는 참상을 간신히 빠져나온 뒤, 곧 ‘압도적인 강적’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권총을 자신에게 겨누는 장면에 이른다.

필자는 이 두 장면에서 강한 서사와 공감이 생겼다. 연인이 재가 되는 장면에서는 ‘내 가족이라면?’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강한 공감을 유발했다. 주인공 구스타프의 극한 절망은 단순한 감탄을 넘어, 이 게임의 강한 서사적 깊이를 느끼게 하는 핵심이었다.

이후 펼쳐지는 스토리 역시 훌륭하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직접 경험해 보시기를 추천한다. ’33’이라는 숫자는 플레이어에게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긴장감을 깔아둔다. 이제 스토리가 주는 강한 동기와 경험을 바탕으로 ’33원정대’를 더 들여다보자.


턴제인데 손맛이 난다: 턴제 + 실시간 액션

’33원정대’는 턴제지만 액션 같은 긴장감이 있다. 기존 턴제 RPG는 보통 명령만 내리고 구경한다는 인상이 강한데, 이 게임은 다르다. JRPG의 대표격인 ‘파이널 판타지’도 오랜 시간 턴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노력해왔는데, 33원정대는 턴제와 액션을 융합하는 또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턴제의 전략성을 유지하면서 피하기/패링으로 리듬·판정·난이도를 섬세하게 튜닝했다. 그 결과 “내 차례”와 “상대 차례” 사이에 빈틈이 없다. 입력 타이밍이 정확할수록 리워드가 커지는 구조라 액션 게임의 몰입감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피하기
기본 패링
그래디언트 카운터 (더 강한 패링)

초반엔 한두 번 쓰러지며 타이밍을 익힌다. 하지만 ‘감’을 잡는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벽처럼 어려웠던 적을 ‘읽어서’ 이기는 경험을 한다. 어려운 적도 몇 번 죽으면서 피하기와 패링의 타이밍을 체득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려운 적을 물리치는 쾌감도 느끼게 된다. 죽는 과정이 학습인 소울류 ‘다크 소울/엘든 링(Elden Ring)’의 ‘경험’이 떠오르기도 한다.

‘패링’과 ‘피하기’를 잘하면 아무리 어려운 적도 공략할 수는 있다. 다만 그 경우 캐릭터가 주는 대미지의 영향이 극히 낮아 전투가 매우 길어지고, 한 번의 실수로 플레이어가 그대로 쓰러질 수 있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감수해야 한다(플레이어는 한 방에 죽을 수 있다;;;).


‘허들’을 넘는 순간이 온다: 학습 곡선 & 시스템

게임에 공부가 필요할까? 대부분의 게임은 비슷한 패턴이 있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플레이할 수 있다. 하지만 33 원정대는 다르다. 확실한 허들 구간이 존재한다.

나의 경우 1막 보스가 그 허들이었는데, 지금까지의 전투 경험과 회피 타이밍만으론 물리적으로 뚫기 힘들었다. 반복되는 패배 앞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 단순 반복 사냥(노가다)을 해서 캐릭터를 성장시키거나, 시스템을 공부하거나.

1막 보스인 ‘램프 지배자’

이때부터 시스템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스킬 시스템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픽토스’와 ‘루미나’ 시스템은 어떻게 활용하는지, 능력치와 스킬 트리는 어떻게 배분해야 하며 캐릭터 간 시너지는 무엇인지. 하나씩 뜯어보니 전투가 다르게 보이고 게임이 달라 보였다.

공부한 만큼 캐릭터가 강해짐을 느꼈고, 이는 곧 ‘재미’로 연결되었다. 그렇게 성장한 나의 캐릭터에게 1막 보스는 더 이상 허들이 아닌 성장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나의 캐릭터가 강해진 만큼 게임이 읽혔고, ‘재미’라는 스탯이 올랐다. 만약 1막 보스라는 허들이 게임 디자이너의 ‘치밀한 설계’라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허들을 학습으로 바꾸는 구조: 시스템 및 방식

전체적으로 템포가 빠르다. 맵을 달리고 마법을 통한 공간 점프를 활용할 때의 이동 템포가 쾌적하게 느껴진다. 전투 템포 또한 경쾌하고 로딩·효과 연출이 과장되지 않아 반복 전투가 피로하지 않다.

달리기도 빠르고(이동) 공간 점프의 템포도 빠르다.

게임 구성

  • 비밀 공간·숨겨진 아이템·숨은 경로 등 발견형 보상이 풍부하다.
  • 이해도가 오를수록 동선이 효율적으로 느껴져 밀도 높은 탐험이 된다.

캐릭터 전투의 개성

  • 캐릭터마다 전투 스타일이 다르다.
  • ‘픽토스’,‘루미나’, 능력치/스킬 트리 배분, 파티 시너지를 연구할수록 체감 화력이 상승한다.
  • 공부를 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나의 캐릭터! 이것이야말로 RPG의 정석이 아니겠는가!

종합적으로 턴제 + 실시간 입력 + 캐릭터 빌드 전략이 플레이어에게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는 RPG 게임의 재미를 만들었다.


그래픽(ART)

‘33 원정대’는 게임 속에 완벽하게 녹아든 뛰어난 그래픽을 선보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유화적인 느낌과 개성 있는 몬스터 디자인은 스토리의 결말과도 이어지면서 이미지가 플롯을 이끌고, 플롯이 이미지를 견인한다.

33 원정대는 벨 에포크(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를 모티브로 한 세계관에 맞춰, 그 시대 감수성을 반영한 캐릭터 복식을 선보인다. 특히 캐릭터 복장의 퀄리티가 매우 높다. 이는 복장을 획득하기 위한 숨은 장소 탐색 및 사이드 미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플레이어가 더욱 꼼꼼하게 게임을 탐험하도록 유도한다. 복장으로 인한 시각적 즐거움은 덤이다.

애니메이션의 타이밍

앞서 언급한 ‘피하기’와 ‘패링’ 시스템 때문에 애니메이션의 타이밍은 전투의 핵심 요소가 된다. 개발진의 의도가 느껴지는 ‘애간장 녹이는 애니메이션 타이밍’은 유저에게 순간 ‘아차’ 하게 만드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필자가 지금까지 게임을 하면서 몬스터의 동작을 이토록 유심히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UI 디자인

전투 UI는 사선 배치를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스타일리시함과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일반 전투 화면에서는 일반적인 가로 UI 배치를 사용하지만, 승리 화면에서는 사선의 각도로 틀어줌으로써 이전 전투 화면의 역동적인 느낌을 계승한다. 이는 평범하지 않은 연출이며 화면 구성의 멋짐을 더한다.

이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33 원정대는 ART 전반의 영역에서 치밀한 계산과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음악 (Sound)

필자는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는 어렵지만, ’33원정대’의 사운드트랙은 스토리와 캐릭터의 감정선에 너무나도 완벽히 녹아들어 있다. 음악은 필자의 마음을 녹이는 듯하며, 특히 ‘이야기 서사의 추진력’을 지니고 있다. 선율이 장면마다 다채롭게 변주되며 감정선과 플롯을 앞으로 이끌어 나간다. 엔딩을 본 후에도 ’33원정대’의 음악을 찾아 듣고 있는 필자를 볼 때마다 큰 감동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장면들이 손끝에 남아 웬지 모르게 마음이 조금 짠해진다.


끝으로

‘33 원정대’는 턴제의 전략·액션의 손맛·아트의 밀도·음악의 감정선이라는 네 가지 요소가 완벽하게 하나로 묶여 있다. 신생 회사의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게임 속에 녹아든 요소들은 결코 초보들의 합이 아닌 베테랑 장인들의 치밀한 협업과 경험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RPG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클레르 옵스퀴르 : 33원정대’를 경험해 보시기를 추천한다.

이제 반격이다!
노욱기 기자

"게임 기자로서 첫 발을 뗐습니다. '33원정대'가 남긴 음악의 여운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이 게임 덕분에 생소했던 샹송의 세계에도 입문하게 되었네요. 게임이 주는 선율이 일상에 스며드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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