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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21세기에 다시 태어난, CRT 브라운관의 게임들

한때, 묵직한 CRT 모니터에 붙은 RGB 단자를 후후 불어 꽂아야 게임을 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으레 게임이라는 것은 그렇게 해야만 했다. 번역은 고사하고 게임 잡지에 딸려오는 대사 번역집을 한 손에 들고 읽어가며 플레이하던 외산 RPG도, 해 뜰 때 전원을 넣어도 해 질 때까지 끝판왕을 보지 못하던 게임도 이제는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최근 그 시절 게임들이 부활하고 있다. 추억을 담보로 킥스타터(Kick Starter)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한 작품들을 톺아봤다.

‘R-Type Final 2’

고전 슈팅 게임의 재림 (메타크리틱 76)

게임의 역사는 슈팅 게임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로부터 시작해 ‘갤러그’, ‘1945’로 이어지는 슈팅 게임이야말로 게임의 대중화를 앞장선 기수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슈팅 게임은 지금 와서는 한물가다 못해, FPS/TPS로 대표되는 3D 슈팅 게임에 밀려 자신의 이름조차 잃을 기세다. 그런 슈팅 게임판에 옛 왕자가 돌아왔다. 

알타입 시리즈는 첫 작품(‘R-TYPE’, 1987, 아케이드)부터 횡스크롤 슈팅의 완성형이라고도 불린 시리즈다. 세로 방향 슈팅 게임들은 넓은 화면에서 압도적으로 몰려오는 적을 상대하고, 보스가 내뿜는 “탄막”을 피해 움직이고, 폭탄으로 탄을 제거하면서 싸우는 경우가 많다. 이 장르를 정립한 ‘구극 타이거(트윈 코브라, 1987)’부터 21세기 슈팅 게임을 지탱해온 탄막 슈팅 게임 ‘동방프로젝트’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하지만 횡스크롤 슈팅계에서 알타입 시리즈의 위치는 다르다. 알타입 시리즈는 최소한의 탄으로 효율 높게 플레이어를 격파하는 게임이다. 화면 가득 몰려오는 적이 아니라, 상상도 못 한 장소에서 툭 나오는 잽으로 플레이어를 거꾸러트리는 이 게임은 마니악하면서도 한번 손에 잡으면 놓지 못하는 중독성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1세기 초반 게임 산업의 재편에서 개발사 아이렘은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고, 고전 횡스크롤 명가 알타입 시리즈는 2003년 ‘R-Type Final’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근근이 스핀오프 게임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알타입 시리즈는, 구 아이렘의 개발자들이 그란젤라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세우며 18년 만에 부활의 축포를 쏘아 올렸다. 2021년 4월 29일 정식 발매된 ‘R-Type Final 2’는, 개발력의 한계와 자금난에 시달리면서도 전성기 알 타입 시리즈의 구성을 상당히 잘 재현한 완성도 높은 신작이다. 스테이지 클리어와 개발을 통해 총 57대의 기체를 즐길 수 있으며, 추후 업데이트와 패치를 통해 전작까지 등장한 모두 99+@개의 기체를 지원하기로 확약한 상태다. 단 극단적으로 높은 난도와 모르면 죽으라는 타입의 퍼즐형 스테이지 때문에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자신이 슈팅 게임에 자신이 있다면 도전해보자. 

‘Bloodstained: Curse of the Moon 2’

명실상부한 악마성 전설, 3번째 작품 (메타크리틱 82)

이 게임은 악마성 시리즈의 정신적 후속작인 Bloodstained IP의 최신작이다. 오랜 시간 동안 악마성 시리즈를 제작한 개발자 이가라시 코지(IGA)가 주도한 ‘Bloodstained: Ritual of the Night’(본지 2020년 11월호 소개)의 킥스타터 개발 과정에서 추가 모금 특전으로 장난처럼 제시되었던 전작 Bloodstained: Curse of the Moon이, 캐슬배니아 3(악마성 전설)의 게임성을 완전하게 계승하고 높은 평가를 얻자, 그 후속작으로 개발되었다. 

게임 자체가 첫 작품부터 완성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악마성 시리즈에 기반을 두고 있어, 매우 완성도가 높다. 악마성 전설로부터 이어진 동료 시스템도 더욱 진화해, 최대 7명이나 되는 다양한 동료로 바꿔가며 플레이할 수 있으며, 2P 협력 플레이도 지원하고 있다. 

이 작품이 가지는 제일 큰 특징은, 그래픽도 그 시절 그래픽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때는 보통 그래픽이 제일 먼저 바뀌기 마련인데, 이러한 과거 그래픽을 철저하게 유지하는 발상은 매니악한 유저들이 더 열광하는 원인이 되었다. 

본작의 단점이라면 너무 레트로한 그래픽을 추구한 결과 알아보기 어려운 화면 구성과 전작보다 더욱 강화된 보스전의 난이도다. 가히 소울류 게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메트로바니아 장르의 뉴트로를 경험하고 싶은 마니아들에게는 강력 추천. 이러한 장르에 자신이 없다면 먼저 ‘Bloodstained: Ritual of the Night’를 플레이해보자.

몬스터 보이와 저주받은 왕국

밝고 가벼운, 하지만 절대 간단하지 않은 (메타크리틱 86)

한국인이라면 한번은 플레이해 봤을 게임 리스트를 꼽자면, 2D 장르로는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가 나올 것이다. ‘메이플스토리’는 본래 플랫포머 장르와 액션 RPG를 합쳐 온라인 게임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었다. ‘메이플스토리’에 익숙하다면 이 게임은 쉽게 적응할 수 있을지도. 플랫포머 액션 RPG는 이 시리즈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몬스터 보이와 저주받은 왕국’은 원더보이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상당히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팬메이드 킥스타터로 시작되어 정규 시리즈로 편입되어 재개발된 작품이다. 원더보이 시리즈는 나올 때마다 장르가 달라지기로 팬들에게 악명이 높은 옛 시리즈였는데, 4번째 게임 ‘원더보이와 몬스터 랜드’에 와서야 장르를 플랫포머 액션 RPG로 확립했다.

본작은 원더보이로는 일곱 번째 작품이며, 전작 몬스터월드 4로부터 24년 만에 부활한 작품이 된다.

주인공 몬스터 보이는 마법에 걸려 여러 동물로 변신하게 되며, 다양한 마법과 검, 방패를 가지고 모든 사건의 원흉을 잡으러 가게 되는 소년이다. 샨테 시리즈의 영향을 받아 캐주얼한 2D 그래픽으로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디자인을 채택했고, 밝은 분위기의 스토리와 높은 시너지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컨트롤보다는 유저의 센스와 조합 능력을 주로 보는 퍼즐, 레벨링을 통한 억지 돌파도 가능한 구간 등은 누구나 쉽게 입문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단점이라면, 일부 비직관적인 퍼즐이나 대사를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풀 수 없는 후반부 요소, 그리고 전체적으로 넉넉하게 제공되지 않는 세이브 포인트를 들 수 있겠다. ‘할로우 나이트’나 오리 시리즈를 즐겁게 플레이한 유저라면 조금 답답할 수 있는 요소다. 

과거로부터의 역습: 온고지신이 필요할 때

어떤 이는 이러한 붐을 게임 업계의 장기적인 침체의 근거로 보기도 한다. 독창적인 신규 게임이 개발되지 않고 과거의 게임만이 재소비되는 퇴행적인 개발 환경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마이티 넘버 나인’의 실패 이후 고전 IP의 재해석과 부활은 마구잡이가 아니라 완성도와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흥행한 게임은 언제나 흥행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추억 속에서 잠들어 있던 게임이 부활한 신작들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게임을 비교할 수 있는, 훌륭한 시금석이 되리라 믿는다. 

육경완 기자

영광이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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