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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서울에서 홍콩을 만났다

당신은 창신동이라는 동네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족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창신동 매운 족발’ 그렇다. 이 동네는 전국에 매운 족발 붐을 일으켰던 발원지 중 한 곳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가야 할 곳은 그 중심지를 지나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동대문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시장을 지나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내가 알고 있는 서울 도심과 다른 사뭇 이색적인 풍경들을 마주한다. 보라색으로 칠해진 옛날식 가옥, 박스 위에서 편안하게 햇볕을 쬐고 있는 냥이들, 맑은 날씨 때문인지 이런 낯선 풍경들 덕분인지 기자는 해외의 한 낯선 골목에 서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끝나지 않는 오르막길 가운데 ‘여긴 길이 왜 이런 거야~!’라고 속으로 외칠 때쯤 네이버 지도에 크게 ‘ 창신동 절벽 마을’이라는 텍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출발 전에도 분명 봤을 텐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 이렇게 살짝 후회가 밀려올 때쯤, 어느새 오르막은 사라지고 조그만 골목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게 보였다. ‘이런 곳에 핫 플레이스가 있을 수 있을까~?’ 하고 폰의 네비게이션을 다시 쳐다보았지만 여전히 지도는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의심스럽지만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 뒤에 찾게 된 건 기자가 찾고 있던 음식점이 아니라 골목 사이에 있는 조그만 단풍모양의 간판. 물론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아직 예약 시간도 남았고 잠시 몸도 쉴 겸 들어섰다.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이 카페의 이름은 ‘단풍도넛’

왠지 김고은과 공유가 생각나는 이 카페는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딱히 여기까지 와서 가야 할 곳은 아니라는 생각에 간단히 커피만 챙기고 나가려는 순간, 숨어있는 또 다른 장소가 발목을 잡았다.

주문하는 곳과 다른 입구가 골목에 있었고, 제2의 입구를 지나 문을 여는 순간 펼쳐지는 다른 세상.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통창에 따스한 햇빛과 감성 넘치는 인테리어. 마치 하늘이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했어~!’라며 메인퀘스트를 깨기 전 보상템을 준 느낌이랄까. 모든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오기 쉽지 않은 곳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카페는 전체적인 공간을 봐야 아름다운데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앉아있었기에 감히 사진을 찍기는 쉽지 않았다. 기자는 앉은 곳에서 소심하지만 최선을 다해 카페를 카메라에 담아봤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인터넷으로 한 번 찾아보길 권한다. 하지만 그 어떤 사진을 찾아보던 직접 가본다면,  기대 이상의 것을 보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게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몸을 녹이고, 본격적으로 오늘의 최종 목적지 ‘창창’으로 향했다. 그렇다. 이 카페는 그냥 우연히 음식점과 가까워 찾게 된 것일 뿐, 메인 퀘스트는 아니다.

‘단풍도넛’을 나서서  풍선이 그려져 있는 계단을 오르자 3분 정도 거리에 최종 목적지 ‘창창’이 자리잡고 있었다. 5시 예약을 잡은 기자는 4시 50여분쯤에 식당에 도착했다. 입구는 아직 굳게 닫혀진 상태였다.

그렇게 10여 분이 흐르고 5시가 되자 ‘촤르르’ 소리와 함께 셔터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고, ‘창창’의 모습이 드러났다. 웨이팅하고 있던 사람들과 기자는 동시에 “와~” 탄성을 내질렀다. 탁 펼쳐진 시원한 풍경, 높은 빌딩 숲 사이에 바쁘게 지내면서 잊혔던 서울의 하늘은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구나…

1980~90년대 홍콩 컨셉으로 꾸며진 이 음식점은 웨이팅이 많기 때문에 미리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주말 창가 자리는 3주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하늘이 도와주어야 앉을 수 있지 않을까. 예약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한다. ‘캐치 테이블’이라는 어플을 깔면 쉽게 할 수 있다. 예약 대기도 걸어놓을 수 있고, 창창 이외 핫플레이스들도 둘러보고 예약하기 좋으니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손님, 예약하셨나요~~?” 친절한 직원의 응대에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음식점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는 1980~90년대 문화의 황금기를 가졌던 홍콩 사회가 녹아 있었다. 지금은  살짝 움츠러들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홍콩문화의 파급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한국 CF에 여러 홍콩 스타들이 출연했고,  흔히 말하는 책받침 스타들의 대부분은 헐리우드가 아닌 홍콩 스타들의 차지였다. 그리고 ‘창창’은 그러한 홍콩의 분위기를 그대로 서울에 가지고 온 느낌이었다. 어두운 조명, 촛불, 화려한 색감, 부유해 보이지만 왠지 씁쓸하고 공허한 듯한 공기, 주문하기도 전에 기자는 이미 이 식당과 사랑에 빠진 것만 같았다.

예약된 자리에 앉아 천천히 메뉴판을 살폈다. 익숙한 듯하지만, 뭔가 한 글자씩 더 붙어있었다. 평소 먹을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나는 모든 메뉴를 맛보고 싶었지만, 결국 가장 잘나가는 추천 메뉴 3가지를 골라 주문했다. 그렇게 눈을 감고 흘러나오는 ‘월량대표아적심’을 듣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조금 촉촉해졌다. 그렇게 잠시 분위기에 취하고 있는 사이 음식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음식은 ‘꿔바로우’. 매우 익숙하지만 많은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기에 시켜봤다.(21,000원)

두 번째 음식은 ‘곱창국수’로 평소에 곱창과 국수를 좋아했던 필자가 가장 호기심을 가졌던 메뉴다. 곱창국수는 생김새부터가 참 재밌었다.(15,000원)

세 번째 음식은 ‘마늘종 자장면’인데 색깔이 기존에 기자가 알던 색이 아니었다. ‘이것이 본토인가~?’라는 생각이 살짝 스쳤지만 아마 그것은 아닐 것이다.(14,000원)

이렇게 모든 음식이 나오고 하나하나 천천히 음미해 봤다. 참고로 기자는 음식에 대해서 잘 감동하지 않는 타입이다. 그리고 서울 안에서 이름있는 음식점들은 현시점에서는 대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돼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맛집은 개인의 취향 차이라고 생각한다.

싹싹 비웠다

그런 기준에서 꿔바로우는 평범하게 맛있었고, 곱창국수는 독특했지만, 곱창과 돼지 비린 맛에 예민하신 분들은 조금 먹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깔이 다른 짜장면도 그럭저럭 이국적인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분명히 이야기하자면 맛이 없진 않다. 내가 맛을 설명하는 어휘가 부족할 뿐.  그리고 이곳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식사가 끝마쳐질 때쯤 해가 졌고, ‘창창’의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해가져서 까만 하늘 아래에서 서울이 반짝반짝 은하수처럼 빛나고 있었다. 혼자서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젠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긴다면 이곳에서 따듯한 음식과 고량주 시켜놓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봐봐~! 친구야, 삭막한 것 같지만,  사실 서울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야”

그렇게 기분 좋게 ‘창창’을 나와 걷다 보니 5분 거리에  3번 마을버스가 있었다. 오르막길이 조금 힘들겠다고 생각한다면 동대문역 근처에서 이 버스를 타면 된다. 그럼 아주 쉽게 아름다운 곳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내려올 때도 걸어서 내려오는 것을 선택했다.

은은하게 불이 켜진 서울 성곽을 따라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익숙한 서울 시내가 나온다. 올라오는 것이 참 힘들었는데, 내려가는 것은 항상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빠르다. 이렇게 오늘의 하루가 끝났고, 컴투스 덕에 경험하게 된 ‘창창’이라는 음식점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당신은 창신동이라는 동네를 들어본 적 있는가?

박태원 기자

혼자서는 가지 않을 법한 곳을 찾고, 걷고, 맛있는 것을 먹고, 새로운 기억들이 쌓이고... 하나하나 반추하며 글로 적어가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훨씬 더 매력적인 일이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이런 경험들을 같이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기회들 많이 만들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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